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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28. 4. 2,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컬럼비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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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96. 11. 14, 일리노이 시카고 |
국적 | 미국 |
요약 미국의 성직자.
30여 년 동안 미국 로마 가톨릭 교회의 발전을 주도한 인물이었다. 온건주의자이며 합의를 이끌어내는 능력이 탁월했던 버나딘은 교황 요한네스 파울루스 2세의 유력한 후계자로 꼽혔다.
버나딘은 1948년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에 있는 세인트메리신학교에서 학사학위를 받았고, 1952년 워싱턴 D.C.의 미국가톨릭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같은 해에 사제서품을 받고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에서 14년을 보낸 뒤, 1966년에 조지아 주 애틀랜타 교구의 부주교로 서임되어 미국에서 가장 젊은 주교가 되었다.
버나딘은 1968~72년 미국 가톨릭 주교총회의 사무총장으로 일하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미국 가톨릭 교회를 개편하는 작업을 주도했고, 그 후 10년 동안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 교구의 대주교로 일했다. 또한 1974~77년 미국 가톨릭 주교총회 의장을 지냈다. 1982년에는 시카고 대주교로 서임되었고, 이듬해 추기경에 선출되었다.
1983년 버나딘은 핵전쟁에 관한 미국 주교들의 교서인 '평화의 도전'을 발표해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의장으로서 이 교서를 작성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여러 가지 견해의 일치점을 찾아내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 주었다. 1987년에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을 예방하기 위해 콘돔 사용을 옹호하는 교육 프로그램 정책을 공식화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1991년 성직자들의 미성년자 성추행과 관련된 추문이 교회를 뒤흔들자 이 사건을 조사하고 처리하는 절차를 확립했다. 2년 뒤, 버나딘은 1970년대에 한 젊은 남자를 성추행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는 이 혐의를 강력히 부인했고, 그를 고발한 사람은 4개월 뒤에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다. 고발자가 1994년말 AIDS로 사망하기 직전에 버나딘은 그를 만나 함께 기도했다.
1995년 6월에 버나딘은 췌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과 화학요법 및 방사선 치료를 받은 뒤 병세가 호전되기 시작했지만, 얼마 후 암이 재발했다. 버나딘은 위엄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죽음과 맞서면서, 수많은 암환자와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했다. 죽기 1주일 전, 그는 미국 대법원에 보낸 편지에서 안락사의 권리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버나딘은 1996년 9월 대통령이 수여하는 자유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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