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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02. 1. 30, 함남 원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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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65. 1. 31 |
국적 | 한국 |
요약 독립운동가.
일찍이 상경해 정신여학교에서 수학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세시위운동에 참가한 후 해외로 망명해 여성계몽과 독립사상 고취에 힘썼다.
1938년 8월 8일 대한민국임시정부의정원 함경남도 대의원에 선임되었다. 임시의정원 최초의 여성위원으로 의정원 회의에서 주미대표부 대표권을 둘러싸고 김원봉과의 이론논쟁을 벌였으며, 광복군 창설, 대일·대독 선전포고와 조소앙의 건국강령 채택문제, 임시정부의 승인을 얻기 위한 외교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1939년 임시정부의 결의에 따라 미국·영국·소련·중국 등 연합국으로부터 임시정부의 승인을 받기 위한 대표로 선임되어 충칭[重慶]에 있는 소련대사관을 상대로 외교활동을 했다.
1942년 5월 한국독립당 충칭 구당[重慶區黨] 간사로 선임되어 중국 내의 일본군이 점령하지 않은 지구에 거주하는 한인교포들에게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선전사업에 주력하는 한편, 당시 미주지역에서 대두되었던 신탁통치론을 공박했다. 1943년 10월 충칭에서 김순애(金淳愛)·최선엽(崔善燁)·최애림(崔愛林)·권기옥(權基玉)·최형록(崔亨祿) 등과 함께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조직, 부회장에 선출되었다.
1943년 임시정부 선전부원으로 임명되어 중국 중앙방송국[中央光波電台]을 통해 국내 동포들에게 한국어 방송을 실시했다. 8·15해방 후 임시정부 국내연락원에 임명되어 선발대로 귀국중, 화중지역의 교포선무공작을 했다.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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