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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구

다른 표기 언어 閔泳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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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09. 7. 21, 서울
사망 1976. 2. 11
국적 한국

요약 독립운동가.

아명은 모세.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아버지 민제호를 따라 11세 때 상하이[上海]로 건너가 상해임시정부에서 주관하던 인성학교를 거쳐 원동중학교·만국항해전문학교 등을 졸업하고, 상해화풍수선회사에서 장태윤 선장으로 근무했다.

중국 군대 및 군수품 수송임무를 수행했다. 1940년 9월 광복군이 창설되자 주계장에 임명되었다. 1942년 7월 중국정부의 명령으로 중국상선 12척을 영솔해 양쯔 강[揚子江]의 마당포태 구역에 기뢰를 띄워 일본 함정의 통과를 저지하는 등 대일항전을 전개하다가, 김구의 명령을 받아 창사[長沙]에 가서 항일선전공작활동을 추진했다. 1942년 10월 일본군이 한커우[漢口]를 점령하자, 임시정부요인과 그 가족과 함께 광저우[廣州]로 이동, 항일선전공작활동을 계속했다.

1943년 1월 일본군이 광저우를 공격하자, 독립운동가의 가족들을 인솔해 계림을 거쳐 류저우[柳州]에 가서 항일가극단을 조직하고 항일선전가극을 공연해 일제의 침략만행을 폭로하고 항일사상을 고취했다. 3월에는 광복군 총사령부의 주계과장에 임명되어 광복군의 보급지원 등 조달업무에 심혈을 기울였다. 9월에 다시 독립운동가 가족을 이끌고 구이저우[貴州]를 거쳐 쓰촨 성[四川省] 치장[綦江]에 안주시키고, 충칭[重慶]으로 갔다.

10월 김구 주석 및 이청천 총사령관의 지령으로 황학수·이준식(李俊植)·김학규(金學奎) 등과 함께 산시 성[陝西省] 시안[西安]으로 가서 한국광복군총사령부서안판사처를 설치하고 전방에 있는 각 지대를 후원하는 동시에 기관지 〈광복 光復〉을 발간해 임시정부의 활동상황, 한국광복군의 대일항전상황 등을 널리 선전했다. 1944년 6월 임시정부의 경무과원에 임명되어 임시정부 요인의 경호업무를 맡았으며, 1945년 6월 광복군 부령이 되었다.

1945년 11월 임시정부요인이 귀국한 뒤, 김구의 지령으로 교포의 보호 및 귀국교섭의 임무를 맡아 중국당국과 교섭하는 한편 주화대표단 총무처장으로 활약하고 1947년 6월 교포 1,000여 명을 인솔하여 귀국했다. 11월 해군에 입대해 인천해경비 부사령관, 해군본부 함정국장, 해군대표 위원, 해군본부 작전참모부장·행정참모부장, 해군사관학교 교장 등을 역임하고 해군소장으로 예편했다.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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