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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립 대학 설립 운동

다른 표기 언어 民立大學設立運動

요약 1923~24년 사회 각계의 민족주의자들이 민족독립을 위한 실력배양과 지도자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민립대학을 설립하기 위해 전개한 문화운동. 1차 사업에 법학부와 경제학부 등을 설립하고, 2차 사업으로 공학부와 농학부 등을 추가할 것을 결의한 후 전국적인 모금운동을 시행했지만 일제의 탄압과 가뭄 등 자연재해가 겹치면서 모금 활동이 불투명해져 운동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1922년 11월 23일 서울 남대문 식도원에서 조선 민립 대학 기성 준비회가 개최되었다. 같은 해 12월부터 각 지방에서 발기인을 선정하여 1923년 3월 29일 전국 170여 군 1,170명 중 462명이 참가한 가운데 조선 민립대학기성회 창립총회가 개최되었다. 총회는 1차 사업으로 400만 원을 모금하여 법학부·경제학부·문학부·이학부를 설립하고, 2차 사업으로 1,250만 원으로 공학부·농학부·의학부를 추가할 것 등을 결의했다. 창립 후 지방조직 확대를 서둘러 5월 10일 경성부지방부 발기를 시작으로 민립대학 지방부가 발기되었다. 그리고 중앙부는 이승훈 등 13명을 지방순회위원으로 파견하여 선전활동을 강화하는 한편, '한민족 1,000만이 한 사람 1원씩'의 구호를 내걸고 전국적인 모금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일제의 감시와 탄압, 계속된 가뭄과 수해까지 겹치면서 모금 활동이 어려워져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은 쇠퇴하여 실패로 끝났다. → 조선민립대학설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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