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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아나톨리아 북부 폰투스의 왕(BC 120~63 재위).
미트라다테스는 키가 크고 힘이 세며, 용감한 투사이자 기민한 사냥꾼이었다. 고대 역사가들은 그에게 낭만적인 분위기를 덧씌웠으며 그의 생애에 관해서는 기이한 전설이 많이 전해내려온다. 특히 유명한 것은 그가 스스로 독약에 대한 면역성을 키웠다는 이야기인데, 그는 매번 복용하는 약물의 양을 치사량에 못 미치는 한도 내에서 조금씩 늘려감으로써 그렇게 했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들이 진실이든 어떻든 간에 분명한 사실은 동방의 전제군주들이 흔히 갖고 있었다는 가장 나쁜 속성들을 그가 대부분 지니고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잔인함과 색욕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미트라다테스가 놀라운 활력과 결단력을 갖춘 통치자였고 수준 높은 정치적 재능을 보였다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 그가 로마 공화국에 심각한 도전을 제기한 몇 안 되는 인물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만 보더라도 그의 능력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는 휘하 병력을 자기 뜻대로 매우 효과적으로 편성했으며 전략에 뛰어났다. 그의 불운이라면 유례없이 탁월한 로마 장군을 3명이나 상대해야 했다는 점과 헬레니즘 사회의 몰락 말기에 집권했다는 것이다. 1세기만 일찍 태어났더라도 그는 영속적인 아시아-그리스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교활하고 야만적인 폭군이었던 그는 오로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비록 헬레니즘의 옹호자로 행세했지만 이는 주로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서였을 뿐 그가 그리스 문화에 심취했거나 자기 왕국에서 그것을 장려해야 할 사명감을 느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의 치세 때 폰투스에서 헬레니즘이 발전했지만 이는 그의 전임자들 때도 역시 그랬으며, 단지 자연스러운 과정이 이어진 것에 불과했다. 그는 그리스인·로마인·아시아인을 모두 똑같이 취급했고, 자신에게 필요하다면 누구든지 궁정에 받아들였지만(그의 군대 부하들은 대부분 그리스인이었으며 말년에는 자신들의 나라를 배반한 로마인들도 몇 명 고용했음) 어느 누구도 신뢰하지는 않았다.
그가 특정 종교나 문화를 선호했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가 그리스인과 아시아인을 새로운 종류의 사회적·정치적 제도 속에 통합시키려 했다고 볼 수는 없다. 로마의 억압에서 그리스인을 해방한 해방자 행세를 하고 뒤에 아시아 속주의 그리스 도시들에서 사회혁명을 장려한 것은 모두 직접적인 정치적 이득만을 추구하는 기회주의자의 행동이었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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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미트라다테스 6세에 대한 평가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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