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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

다른 표기 언어 文宗 동의어 고려 제11대 왕, 휘, 徽, 촉유, 燭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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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019(현종 10)
사망 1083(문종 37)
국적 고려, 한국
종교 불교
재위 1046년∼1083년
시호 강정명대장성인효대왕(剛定明大章聖仁孝大王)
능묘 경릉(景陵)

요약 고려의 문물제도와 문화를 발전시켜 고려 황금기를 이룩한 고려 제11대 왕. 현종의 셋째 아들로 이름은 휘, 자는 촉유로 정종이 죽은 뒤 왕위를 계승하여 고려의 문물제도를 크게 정비했고 불교 및 유교, 미술 등에 이르는 문화 전반에 걸쳐 큰 발전을 이루었다. 1069년에 양전보수법을 제정해 전답의 세율을 정했으며 그 뒤 녹봉제, 선상기인법 등을 제정하여 집권적 지배체제의 중요한 기초를 다졌다. 한편 불교를 독실히 신봉하여 흥왕사를 준공했고 대각국사 의천이 되는 왕자 후를 출가시켜 승려가 되게 했다. 유학을 장려하여 12도의 사학을 진흥시켰다.

이름은 휘(徽), 자는 촉유(燭幽). 제8대 현종의 셋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원혜태후(元惠太后) 김씨이다. 1022년(현종 13) 낙랑군(樂浪君)에 책봉되고, 1037년(정종 3) 내사령이 되었다. 그의 형인 정종에게 아들이 있었으나, 정종이 죽은 뒤 왕위를 계승했다.

즉위하자 시중 최충(崔沖)에게 명해 종래의 율령(律令)·서산(書算)에 대한 상세한 고정을 가해 형법의 기틀을 마련하게 했다.

1049년(문종 3) 공음전시법, 1050년 재면법(災免法)·답험손실법(踏驗損失法) 등을 마련했다. 1062년 삼원신수법(三員訊囚法), 1063년에는 국자제생의 고교법 등을 제정했다. 1069년에는 양전보수법(量田步數法)을 제정해 전답의 세율을 정했으며, 그뒤 녹봉제(祿俸制)·선상기인법(選上其人法) 등을 제정하여 집권적 지배체제의 중요한 기초를 다졌다. 한편 불교를 독실히 신봉하여 1067년 흥왕사를 준공했고, 왕자 후(煦:대각국사 의천)를 출가시켜 승려가 되게 했다. 유학도 장려하여 최충의 9재를 비롯한 12도(十二徒)의 사학(私學)을 진흥시켰다.

지방통치제도도 문종 때 이르러 양계(兩界)에 방어사·진사·진장의 수가 늘어나고 남방의 제도(諸道)에서는 지주부군사·현령이 증설되어 수령의 관료제가 강화되었다. 대외관계에 있어서는 북편에 침입하는 동여진을 토벌했으나 나중에는 회유책을 썼다. 특히 송(宋)나라와는 국교를 열어 친선관계를 유지했다. 문종 재위기간에 고려의 문물제도는 크게 정비되었고, 불교·유교·미술·공예 등에 이르기까지 문화 전반에 걸쳐 큰 발전이 있었다. 학문을 좋아했으며, 서예에도 뛰어났다. 양주 삼천사(三川寺) 대지국사비(大智國師碑)의 비문은 그의 친필이다. 능은 경릉이며, 시호는 인효(仁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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