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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종원

다른 표기 언어 Wu Tsungyuan , 武宗元
요약 테이블
출생 미상
사망 1050
국적 중국, 북송(北宋)

요약 중국 북송 때의 화가.
(병). Wu Zongyuan. (웨). Wu Tsungy대체이미지an.

본명은 종도(宗道), 자는 총지(總之). 허난 성[河南省] 백파(白波:지금의 멍진[孟津]) 사람이다. 관직은 우부원외랑(虞部員外郞)에 이르렀다.

도교와 불교의 인물화에 뛰어났으며 오도현(吳道玄)을 존숭했다. 17세기에 이미 이름을 날렸고, 송나라 진종(眞宗)이 도교를 신봉해서 경덕(景德) 말년(1007)에 옥청소응궁(玉淸昭應宮)을 지었을 때, 장년의 무종원은 이 유명한 도교사원의 벽화제작을 지휘했다. 또 뤄양[洛陽]·중악[中岳]·쉬창[許昌] 등지에서 종교벽화를 제작했는데 모두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자기 그림을 중히 여겨서 "귀인이나 유명한 관리가 날마다 문전에 와서 간곡히 부탁해도 허락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작품은 겨우 〈조원선장도 朝元仙仗圖〉만이 세상에 남아 있는데 이는 어느 도교사원 벽화의 밑그림인 것같다. 조자앙(趙子昻)은 이를 진품이라고 판정했다. 그림의 내용은 봄을 주관하는 신(神) 동화(東華)와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의 두 신이, 선관(仙官)·시종·의장행렬을 이끌고 태상현원황제(太上玄元皇帝)를 알현하러 가는 것이고, 모두 88명이 그려져 있다. 유도순(劉道醇)은 무종원이 오도현을 배워 "고요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체득했다"고 했으며, 소철(蘇轍)도 무종원의 작품이 "오도현의 그림을 방불케 한다"고 했다. 탕후(湯垕)는 "인물을 그림에 있어 운필(運筆)이 물 흐르는 듯하여 정신과 안색이 살아 움직인다. 시종과 마부들의 뒤돌아보는 얼굴 모습이 하나하나 살아있는 듯해서 옛사람들이 매우 칭찬했다"고 했다. 이 그림은 무종원과 북송 종교인물화의 대표작이며 '화성'(畵聖) 오도현을 연구하는 데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된다. 또한 이 그림은 당·송대 도교의 발전과 그 변화상을 연구하는 데 진귀한 형상(形象) 자료를 상당히 많이 제공하고 있다. 이 그림은 현재 미국에 소장되어 있다. 한편 쉬베이훙[徐悲鴻] 기념관에는 낙관이 없는 그림 한 폭이 있는데 역시 송대 작품으로 시대가 조금 늦다. 대략 비교해보면 무종원의 그림은 오도현의 '활달하고 유유자적한 기세'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쉬베이훙 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는 그림과 비교하면, 붓의 기세를 꺾음에 힘이 있으며 초탈적인 정취가 있다. 두 그림의 운필이나 조형·구도는 아주 높은 예술수준에 도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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