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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고려 때부터 전하는 향악정재.
이인로의 〈파한집 破閑集〉에 따르면 신라 때 원효가 호로(호리병)를 어루만지며 시중에서 노래하며 춤췄는데 이를 '무애'라 했다 한다. 〈세종실록〉에는 1434년 예조에서, 무애정재는 그 가사가 오로지 불가어로 되어 있어 탄망하므로 이후로 모든 사악에서 무애정재를 없애자고 한 뒤로는 연행되지 않았다 한다.
조선 말기 〈진찬의궤〉에는 그림과 함께 무애무를 추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국연정재창사초록 國讌呈才唱詞抄錄〉에 가사가 전하는데 이는 순조 때 가사를 새로 짓고 춤을 재연한 것이다. 만년환지곡(향당교주)이 연주되면 악사가 호로를 들고 가서 전중에 놓고 들어오는데 모두 27박에 따라 춤을 바꿔가며 춘다. 춤추는 인원은 원무 2명, 협무 1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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