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

이러한 반증에 대한 입장은 반증주의라는 이름으로 과학철학자 카를 R. 포퍼에 의해 제기되었다.

반증의 의미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언명을 예로 들어보자. 이때 무한 가지의 검은 까마귀 사례를 수집하는 것은 인간의 능력으로 불가능하다. 즉 검은 까마귀의 사례를 아무리 많이 제시할지라도 이 언명의 참을 인정할 수 없다. 아무리 많은 정합 사례를 제시하더라도 언제 부정합 사례가 출현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은 까마귀가 아닌 희거나 그밖의 어떤 색을 지닌 까마귀가 발견된다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단 하나의 검지 않은 까마귀 사례만으로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언명은 거짓으로 판명되어버린다. 반증은 이러한 논리를 과학이론에 적용한 것이다.

포퍼는 반증을 과학이론의 수용 또는 거부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학이론은 단 하나의 반증 사례에 의해 거부된다는 입장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처음 제기되었을 때, 이 이론은 과학자 사회에서 즉각 수용되지는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이론의 진위를 의심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에 대해 만일 자신의 이론을 반박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반증 사례만 제시되어도 자신은 스스로 일반상대성이론이 거짓임을 인정하고 그 이론을 포기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포퍼는 이러한 아인슈타인의 공언에 영향을 받았다. 또한 포퍼가 반증주의를 내세웠던 당시에는 논리실증주의의 검증원리가 과학이론의 수용기준으로 풍미하고 있었다. 검증원리에 따르면 과학이론의 수용은 정합 사례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언명 사례에서 보았듯이 어떤 과학이론에 맞는 사례를 아무리 많이 제시해도 그 이론을 수용하는 데는 난점이 있다. 따라서 포퍼는 과학이론의 수용기준은 검증이 아닌 반증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포퍼는 또한 반증가능성을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하는 구획기준으로 삼았다. 즉 어떠한 가설이나 이론을 과학적이라고 주장하려면 원칙적으로 반증이 가능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반증이 불가능한 언명이나 개념으로 이루어진 이론은 과학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연과학이론은 반증을 시도해볼 수 있지만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과 같은 것은 반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과학일 수 없다고 보았다. 즉 프로이트의 '자아'(Ego)·'초자아'(Super Ego)와 같은 개념이나 이와 관련된 내용은 반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포퍼의 반증주의는 너무나 엄격하다 하여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는데, 포퍼 계열의 과학철학자 임레 라카토슈는 〈반증과 과학연구 프로그램 방법론 Falsification and the Methodology of Scientific Research Programmes〉(1970)에서 이러한 엄격한 반증주의를 비판하고 보다 완화된 형태의 반증주의 입장을 발전시켰다.

포퍼의 반증주의는 〈탐구의 논리 Logik der Forschung〉(1934)에 담겨 있는데, 이 저서는 〈과학적 발견의 논리 The Logic of Scientific Discovery〉(1959)로 번역되어 과학철학의 고전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