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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955년 4월 18일부터 4월 24일까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29개 독립국 대표들이 인도네시아의 반둥에 모여 양 대륙과 세계의 현안을 논의한 국제회의.
'아시아·아프리카 회의'라고도 한다. 인도네시아·미얀마·스리랑카·인도·파키스탄의 5개국이 주최국이 되어 양 대륙의 자주독립국들을 초청했으나 남한, 중화민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이스라엘은 반공·호전성 또는 인종차별주의를 이유로 제외되었다.
서구열강들이 아시아에 관한 중대사안의 결정에 있어서 당사국들의 참여를 배제하고 있다는 불만이 반영된 것이며 이와 함께 중국과 미국 간의 긴장에 대한 우려, 중국의 개방에 보다 확고한 기반을 마련하려는 열망, 프랑스령 북아프리카(알제리) 문제를 중심으로 한 식민주의의 배격, 서뉴기니(이리안 바라크)를 둘러싼 네덜란드와의 분쟁에서 자국의 입장을 강화하려는 인도네시아의 의도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당시의 쟁점은 동유럽과 중앙 아시아에 대한 소련의 정책을 서구의 식민주의와 동일시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는데, "식민정책은 어떠한 형태이든간에 단죄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공동 코뮈니케가 채택됨으로써 은연중에 소련의 제국주의 정책을 비판했다. 중국의 대외관계는 미국과의 협상에 기꺼이 나서겠다는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의 온건·유화 노선이 몇몇 반공국가들이 품고 있는 불만을 가라앉힘으로써 강화되었다(→ 저우언라이).
국제연합(UN) 헌장의 원칙들과 자와할랄 네루의 5개 원칙을 통합한 '세계평화와 국제 협력증진에 관한 선언'(반둥 10원칙)이 만장일치로 채택되고 중립주의 및 협력이라는 이른바 '반둥 정신'이 정립되었으나 각국 이해관계의 대립에 중국-인도 국경분쟁, 중·소 분쟁 등이 곁들어져 알제리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제2차 회의는 무산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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