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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974년 재일동포였던 문세광이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하던 중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피격되어 사망한 사건. 이 사건으로 육영수 여사는 머리에 중상을 입고 별세했고, 합창단이었던 여학생 한 명도 사망했다. 일본 정부가 수사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 이후 냉각되었던 한일관계는 이 사건으로 더욱 악화되었다.
개요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이었던 서울 중구 장충동 소재 국립극장에서 문세광(文世光)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저격을 시도하는 가운데 단상에 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피격되어 사망한 사건. 문세광은 사형을 선고받았고 그해 12월 20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경과
문세광은 일본에서 권총을 입수했고 위조 여권으로 입국하여 광복절 기념식장이었던 국립극장에 경호 소홀의 틈을 이용하여 잠입, 객석에 앉아 있었다. 10시 23분, 박정희 대통령이 경축사를 읽기 시작하자 문세광은 통로로 뛰어 나오면서 단상을 향해 권총을 발사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연설대 뒤로 몸을 피했고, 경호원이 단상으로 나와 응사하면서 총격전이 벌어졌다.
이 와중에 문세광의 총탄이 단상 옆에 앉아 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에게 명중했고, 기념식에 참석한 합창단인 성동여자실업고등학고 2학년 학생도 또 다른 유탄에 맞았다. 머리에 총탄을 맞은 육영수 여사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어 5시간에 걸친 응급 수술을 받았으나 오후 7시 향년 50세로 별세했다. 이 사건으로 경비와 경호에 대한 책임을 지고 홍성철 내무부장관과 박종규 대통령경호실장, 양택식 서울 시장이 물러났다. 범인 문세광은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그해 12월 20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결과와 영향
문세광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계통의 재일동포라는 점에서 국내외에 커다란 정치적 파문을 일으켰다. 한국 정부는 이 사건이 북한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며 조총련의 김호룡을 배후인물로, 일본인 요시이(吉井) 부부를 공범이라고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게 범인 문세광의 배후인물과 공범으로 각각 지목된 김호룡과 요시이 부부에 대한 강제수사 및 조총련의 불법화 또는 적어도 활동단속을 요구했으나 일본 정부는 이에 적극적인 조치를 보이지 않았다. 또한 이 시기에 계속되고 있던 일본 정계요인들의 남북한 등거리외교 시사 발언과 함께 이 사건은 1973년 김대중납치사건 이후 냉각된 한일관계를 더욱 악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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