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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소

다른 표기 언어 朴異素 동의어 철호, 哲浩, 박모, 朴某

요약 박이소는 199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다. 대표작으로 <무제>·<호모 아이덴트로푸스>·<세잔의 무게> 등이 있다.
1985년부터 뉴욕 브루클린 북부 그린포인트 지역에 제3세계 작가들과 미국 내 비주류 작가들은 소개하는 공간인 마이너 인저리를 창립했다. 이를 통해 미국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뉴욕예술재단상과 미국연방예술기금상을 받았다. 뉴욕 미술계에서 작가가 만들어지는 시스템에 저항했고, 자유기고가로서 미술제도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표현했다. 새로운 미술 전문 이론서를 한국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1994년 귀국한 후 국내에 포스트모더니즘 예술론을 소개했고, SADI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활동하면서 새로운 예술교육의 비전을 실천했다.

본명은 철호(哲浩), 필명은 박모(朴某). 1981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였고, 1982~85년 미국 뉴욕의 프랫인스티튜트에서 공부했다. 1985년부터 뉴욕 브루클린 북부의 그린포인트 지역에 비영리 공간인 '마이너 인저리'(Minor Injury)를 창립하여 직접 운영했다. 이곳에서 그는 제3세계 출신 작가들, 미국 내 비주류 작가들의 작업을 소개하고 정보지를 발간하였으며, 퍼포먼스와 세미나 등을 개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또한 그는 이곳에 지역사회 행사를 끌어들여 지역공동체와 활발한 교류 및 대화의 장을 마련했다. 박이소의 이러한 활동은 다문화주의가 정점을 향해가던 1980년대 중반에 문화적으로 크게 소외된 브루클린 지역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미국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마이너 인저리'의 활동을 바탕으로 미국 생활을 주제로 뉴욕 브롱스 현대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가졌고, 뉴욕예술재단상과 미국연방예술기금상을 받았다.

그는 뉴욕 미술계에서 작가가 만들어지는 시스템에 저항적 입장을 보였고, 그에 대한 대안 속에 작가로서 자신의 위상을 설정했다. 또한 이 시기에 그는 미술제도에 대해 비판적 관점과 길을 예시하는 자유기고가로서, 그리고 창작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전문 이론서의 우리말 번역자로도 활동했다.

1994년 귀국한 후 포스트모더니즘 예술론을 소개하였고, 작가 거주 프로그램 등에 참여하면서 1990년대 한국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작가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다. 또 SADI(Samsung Art & Design Institute)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활동하면서 탁월한 비평적 안목과 철저한 교수법으로 새로운 예술교육의 비전을 실천하였다.

1997년 광주비엔날레에 출품했으며 2001년 '대안공간 풀'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출품하였으며, 에르메스사 코리아 미술상을 수상했다. 귀국 후 그의 작품은 미국에서처럼 소수의 정체성 이슈에 기반한 작업보다는 인간의 무력함, 예상할 수 없음, 행방불명, 목적 없음 등에 더 관심을 두면서 일종의 미술의 무용성 자체를 주제로 삼은 것으로 변화되어 갔다. 작업실에서 심장마비로 숨지기 몇 년 전부터 그는 인간의 유한하고 찰나적인 삶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몇 개 프로젝트를 작업했다.

사후인 2004년 8월 부산비엔날레 현대미술전에 설치작품 〈우리는 행복해요〉가 전시되었다. 대표작품으로 〈무제〉·〈호모 아이덴트로푸스〉·〈세잔의 무게〉·〈유엔탑〉·〈미확인발광물체〉·〈As an Escape〉·〈Monumenta Me〉등이 있고, 번역서로 〈문화연구와 문화이론〉·〈이것은 미술이 아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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