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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농구선수로서는 크지 않은, 신장 1m 76㎝에도 탄탄한 기본기와 두뇌 플레이로 1960년대 한국 여자농구를 세계정상급으로 올려놓은 선수이다.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농구천재', '아시아 최고의 센터'로 불렸다. 숙명여자중학교 때 농구를 시작해 숙명여자고등학교 재학 중 주장선수로 두각을 나타냈다. 숙명여자대학교를 거쳐 1959년, 한국상업은행 농구팀 주전멤버로 활약하면서 상업은행 팀을 아시아에서 제일가는 팀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한국여자농구 최초로 참가한 세계대회인 1963년 페루 세계선수권대회에서 8위를 차지하였음에도, '기초기술이 잘 다듬어져 있고 두 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리바운드 시 정확한 위치 선정으로 한 박자 빠른 공격을 가능하게 하는 센터'로 평가되어 '월드 베스트 5'에 선정되었다.
농구선수로서는 크지 않은, 신장 1m 76㎝에도 탄탄한 기본기와 두뇌플레이로 1960년대 한국 여자농구를 세계정상급으로 올려놓은 선수이다.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농구천재', '아시아 최고의 센터'로 불렸다. 숙명여자중·고등학교를 거쳐 숙명여자대학교 영문학과,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체육학과,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스프링필드대학 대학원 체육학과를 졸업했다.
숙명여자중학교 때 농구를 시작해 숙명여자고등학교 재학 중 주장선수로 두각을 나타냈다. 숙명여자대학교를 거쳐 1959년, 한국상업은행 농구팀 주전멤버로 활약하면서 상업은행 팀을 아시아에서 제일가는 팀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한국여자농구 최초로 참가한 세계대회인 1963년 페루 세계선수권대회에서 8위를 차지하였음에도, '기초기술이 잘 다듬어져 있고 두 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리바운드 시 정확한 위치 선정으로 한 박자 빠른 공격이 가능하게 하는 센터'로 평가되어 '월드 베스트 5'에 선정되었다. 1965년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고, 1967년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소련팀에 패해 준우승했으나 이례적으로 대회 MVP로 선정될 정도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1967년 도쿄 유니버시아드 대회 우승을 끝으로 은퇴했다.
1982년 신용보증기금 여자농구단 창단 시 최초의 여성 감독이 되었고, 1983년 청소년 여자대표팀 감독을 지냈다.
1986년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농구담당관, 1988~92년 여자농구협회 이사를 역임하였다. 1999년 '세계여자농구 107년 사상 위대한 선수 및 지도자 25명'에 포함되어 아시아계로는 유일하게 '미국여자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963년 제1회 대한민국 체육상을 수상했고, 국민훈장 석류장, 5·16민족문화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체육학 석사논문 〈국제경기를 통한 국가간의 이해증진에 대한 소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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