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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5. 1. 22, 강원 속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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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영화감독.
박광수는 고향에서 중학교까지 다니고, 교육자였던 부친의 직장을 따라 부산으로 이사해 고등학교를 마쳤다. 고교시절 그림에 재능을 보인 그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에 들어갔다. 그는 1980년 교내 영화 동아리에 들어가 8㎜ 단편영화를 만들며 필름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고, 1983년 대학을 졸업하고 제도권 영화계 대신 선택한 프랑스 유학이 영화에 눈뜨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2년간 영화교육특수학교(Ecole Superieure etudiee Cinematographe)에서 다양한 영화를 체험하고 귀국한 그는 이장호 감독의 조수로 일했다.
박광수는 1988년 연좌제로 고통받는 청년과 미국병에 걸린 청년을 등장시켜 신분과 계급에 따른 부와 빈곤, 희망과 좌절의 아픔을 웃음 속에 숨겨놓은 첫 영화 〈칠수와 만수〉로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청년비평가상'을 받았다. 그는 2번째 영화 〈그들도 우리처럼〉(1990)에서 수배자의 도피처인 탄광촌을 무대로 노사의 갈등과 공작정치의 가학성을 보여주는 한편, 인간을 종속시키는 천민 자본주의의 물신화에 경종을 울렸다. 1991년 이야기의 무대를 유럽으로 옮겨 이산가족의 비극적인 상봉이 분단상황에서 비롯됨을 설득한 영화 〈베를린 리포트〉를 발표했으며, 1993년 〈그 섬에 가고 싶다〉를 발표했다.
그는 1995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청룡 영화제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예술적 깊이와 기교 면에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정한 인물(전태일)과 특수한 사건(분신자살)을 묘사하면서 한 시대와 인간의 삶을 반영한 이 영화는 젊은 '노동자의 현실'을 영혼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이재수의 난〉(1999), 단편영화 〈디지털 3인3색 : 빤스 벗고 덤벼라〉(2000)와 〈여섯개의 시선 : 얼굴값〉(2003), 〈눈부신 날에〉(2007) 등을 만들었다. 특히 가족의 의미를 일깨운 영화 〈눈부신 날에〉(2007)는 로마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2008년 뭄바이 아시아영화제에서 아시아 영화 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아시아 영화 문화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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