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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87. 11. 25(구력 11. 13), 모스크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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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43. 1. 26, 러시아 연방 사라토프 |
국적 | 소련 |
요약 소련의 식물유전학자.
당시 재배하고 있던 식물들의 기원에 관한 연구를 했는데, 이러한 연구는 그 당시 소련 생물학의 정부 대변인이었던 리센코의 적개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영국의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유전학의 창시자인 윌리엄 베이트슨의 지도를 받으며 공부했고 런던에 있는 존 인네스 원예연구원에서 연구활동을 했다(1913~14). 러시아로 돌아온 뒤 사라토프대학교에서 식물학교수로 있으면서(1917~21), 페트로그라드에 있는 응용식물학연구소의 소장을 지냈다. 또 전 연방 레닌 농업과학 아카데미의 원장으로서 곳곳에 400개의 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1916~33년 이란, 아프가니스탄, 에티오피아, 중국, 중앙 아메리카, 남아메리카 등 전세계의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엄청난 양의 식물들을 채집했으며, 또한 약 5만 종(種)에 이르는 야생식물의 변종과 3만 1,000여 개의 밀 품종을 연구·육종(育種)하기 위해 소련으로 들여오기도 했다. 그는 전세계를 여행하면서 행한 연구와 관찰을 바탕으로 당시 재배하던 식물들의 기원지는 그 재배식물과 유사한 야생종이 환경에 대해 가장 높은 적응력을 보이는 지역일 것이라고 가정했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재배식물의 기원, 변이, 적응 및 육종 The Origin, Variation, Immunity and Breeding of Cultivated Plants〉(1951년 K. S. 체스터가 영역)에 요약되어 있다.
1920년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켜 종의 다양성이 가장 높은 지역이 그 식물의 기원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그러한 기원지로 12곳을 제안했다. 또한 식물 개체군에 대한 연구로도 이름이 알려졌으나, 1934~39년 매년 열린 몇 회의 식물육종학회에서 리센코는 바빌로프에 대해 멘델과 모간의 유전학을 신봉하고 그것을 단순히 전달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소련 내에서의 그의 명성은 무너졌고 1940년에 체포되어 사라토프에 있는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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