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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37. 12. 25, 오스트리아령 롬바르디아 벨라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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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30. 4. 1, 독일 바이로이트 |
국적 | 독일 |
요약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아내.
결혼 전 성은 Liszt. Cosima von Blow라고도 함(1857~68).
바그너가 죽은 1883년부터 1908년까지 바이로이트 축제를 지휘했다.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인 프란츠 리스트와 마리 다구 백작부인 사이에 태어난 사생아였다.
이 두 사람 사이에는 2명의 아이가 또 있었는데 리스트는 나중에 이 아이들을 적출(嫡出)로 받아들여 교육시켰으며 딸들에게는 결혼지참금을 주었다. 코지마와 여동생 블란디네는 파리에서 아버지의 정부(情婦)인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이 고용한 가정교사에게서 교육받은 뒤 베를린으로 건너가 한스 폰 뷜로의 어머니 집에서 교육을 받았다. 1857년 당대의 뛰어난 지휘자이자 리스트의 애제자인 한스 폰 뷜로와 결혼했으며 결혼 뒤에는 뷜로의 작품활동을 격려해주고 그에게 헌신했으나 결혼생활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 결혼에서 두 딸을 낳았고 뒤이어 리하르트 바그너의 두 딸 이졸데(1865)와 에바(1867)를 낳았다. 1868년 4명의 딸과 함께 뷜로 곁을 떠나 바그너와 살기 위해 트리브셴으로 떠났다. 이들은 결국 1870년에 결혼했고 그해 바그너는 아들 지크프리트(1869~1930)의 출생을 기념해 〈지크프리트 목가 Siegfried Idylle〉를 작곡했다.
1883년 바그너가 죽자 바이로이트 축제를 맡아 1908년 아들이 이어받을 때까지 계속 예술감독으로 일했다. 그녀는 스스로 선택한 이 일에 자기만의 독특한 열정을 쏟았으며 바그너의 작품에 변함없이 헌신적이었다. 또 축제의 레퍼토리와 예술가 선정, 연출방식에 영향을 끼치면서 상업적·사회적으로 축제진행의 숨은 실력자로 행세했다.
나중에 시력을 완전히 잃고 바이로이트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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