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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2세기 전후 고려는 권력과 부를 계속 누리려는 특권귀족세력과 신흥세력이 갈등을 일으켰다. 김부식을 중심으로 한 개경 문벌귀족은 유교를 정치이념으로 받아들였으며, 그 성격은 보수적이고 사대적이었다. 반면, 신흥세력은 도교의 풍수지리설 등에 유교를 결합시키고 고려왕조의 자주성을 내세우며 문벌귀족의 사회적 폐단을 지적하여 개혁정치를 추구했다. 특히 묘청·정지상 등은 서경천도론·칭제건원론·금국정벌론을 주장했다. 인종은 서경천도론에 대해 호의적이었으나 문벌귀족들은 거세게 반대하며 묘청의 처단을 요구했다.
이에 묘청은 1135년 정월에 서경에서 조광·유참 등과 함께 난을 일으켰다. 이들은 국호를 대위, 연호를 천개, 군대이름을 천견충의군이라 했다. 약 1년간 관군에게 저항했던 묘청의 군대는 1136년 2월 항복했다.

12세기를 전후한 고려사회는 생산력 발전을 수반하여 정치·사회 구조가 변화하는 시기였다.

농업생산이 증진되면서 잉여축적이 가능해지고 각 계층간의 분화가 심화되었다. 이러한 정치·사회 문제로 크게 부각된 것은 지배층 내부의 대립이었다. 문벌을 이루면서 고려왕조의 권력과 부를 계속 누리려는 특권귀족세력과 새로이 등장하는 신흥세력이 갈등을 일으켰다. 1126년에 일어난 이자겸의 난으로, 외척권세가이던 이자겸이 제거된 이후에는 중앙정계에 다시 문벌귀족화한 부류와 신흥세력이 등장하게 되고 대립 갈등이 첨예해졌다.

김부식(金富軾)을 대표로 하는 개경 중심의 문벌귀족은 유교를 정치이념·학문체계로 받아들여 합리적인 정치운영을 지향하는데, 그 성격은 다분히 보수적이고 사대적이었다. 이에 비하여 지방출신의 신흥세력은 도교의 풍수지리설과 같은 전통사상에 유교사상을 결합시켜 토속적이고 전통적인 성격을 강조하고 고려왕조의 국가적 자주성을 내세우며 문벌귀족의 사회적 폐단을 지적하여 개혁정치를 희구했다. 특히 후자는 묘청·정지상(鄭知常)·백수한(白壽翰) 등이 중심이 되어 풍수지리설을 바탕으로 서경천도론(西京遷都論)·칭제건원론(稱帝建元論)·금국정벌론(金國征伐論) 등을 주장했다.

이들은 우선 개경은 지덕(地德)이 쇠했으므로 지덕이 왕성한 서경으로 천도해 고려왕조를 중흥시키자고 했고, 국왕을 황제라 부르고 연호를 사용해 나라의 자긍심을 높일 것을 주장했다. 이들 중에는 서경 출신의 신흥관료가 많았는데 서경으로 천도해서 중앙정치의 주도권을 장악하려 했다.

이에 대하여 인종(1122~46 재위)은 칭제건원론이나 금나라 정벌에 대해서는 응하지 않았으나 서경천도론에 대해서는 호의적이었다.

이는 내외적 위기의식이 가중됨에 따라 고려왕조 스스로가 국가의 기틀을 공고히 하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을 반영한 것이었다. 인종은 묘청·백수한 등의 주청을 받아들여 서경으로 자주 행차하고 관정도량(灌頂道場)을 베풀며 임원역(林原驛) 근처에 대화궁을 짓고, 15항목의 유신정령(維新政令)을 중외에 선포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부식 등의 개경 문벌귀족들은 서경천도론을 거세게 반대했다.

유교입장에서 보면 풍수지리설은 미신적이고 비합리적일 뿐 아니라 서경천도에 대한 정치적 위기의식이 가중되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서경에서 재이(災異)가 자주 일어나자 김부식을 대표로 하는 문벌귀족세력은 서경천도를 격렬하게 반대하며 묘청의 처단을 요구했다. 묘청 등은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해 1135년 정월에 서경에서 분사시랑(分司侍郞) 조광, 병부상서(兵部尙書) 유참 등과 더불어 난을 일으켰다.

이들은 국호를 대위(大爲), 연호를 천개(天開), 군대 이름을 천견충의군(天遣忠義軍)이라 했다. 이들은 개경 출신의 인사 대부분을 가두고 군사 교통의 요지인 절령(황해 자비령)을 차단했고, 여러 관속을 두어 양부(兩府)의 관지에서 주부의 직임에 이르기까지 모두 서경인으로 임명했다. 서경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고려왕조는 정부관군의 총책임자로 김부식을 임명하고 기타 군사통솔의 책임자를 문벌귀족들로 구성했다.

김부식은 출정에 앞서 개경에 있는 백수한·정지상·김안 등의 서경천도파를 죽이고, 평산·관산을 거쳐 서경으로 향했다. 약 1년간 관군에게 완강히 저항하던 묘청의 군대는 1136년 2월 총공격을 당해 항복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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