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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뒤 모스크바에는 11개의 행정구역이 설정되었으나 1960년 시 영역이 확장됨에 따라 6개의 행정구역이 신설되었다. 그후 정책적으로 대형 건축물들을 세우고 도심에서 교외로 인구를 이주시키면서 1968, 1976년에 또다시 새로운 행정구역들이 생겨나 1976년에는 그 수가 30개로 늘어났다.
1980년대 중반까지는 더 많은 영역이 합병되면서 32개로 늘어났고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행정구역마다 인구수가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구역일수록 면적도 넓고 인구수도 많아지는 경향을 띤다. 각 행정구역에서 뽑힌 대표자들로 모스크바 시 당국하의 시 의회가 구성된다. 이들의 주요업무는 중앙정부에서 나오는 모스크바 시의 연간 예산을 집행하는 것이다. 모스크바 시가 '연방에 종속된' 상태이므로 시 의회는 행정구역보다는 러시아 연방 정부에 대해 책임을 진다.
소련 정부청사가 이 시에 있었기 때문에 많은 행정업무가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또한 국가 기구·조직뿐 아니라 정부부처, 외국 대사관들도 이곳에 있다. 이전에는 크렘린이 정부 행정의 중심무대로서 최고 소비에트 간부회의,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및 대회 등의 회의를 개최했지만 정부부처 건물들은 도심에 널리 흩어져 있다. 외무부는 스탈린 시대에 사도보예 환상도로변에 지은 초고층 건물에 있으며 몇몇 부서들은 프로스페크트칼리니나에 새로 지은 고층 빌딩 안에, 그리고 프로스페크트칼리니나의 외곽에는 각료회의 건물이 자리잡고 있었다. 외국 대사관들은 남서쪽 교외 레닌 구릉으로 옮겨졌지만 도심에 남아 있는 것도 많다.
소비에트 시대 동안 모스크바 시 당국은 약칭인 모소베트(Mossovet)로 흔히 알려진 모스크바 인민대표 소비에트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 이와 같은 인민대표기관의 형태가 처음 나타난 것은 1905년 러시아 혁명중이었다. 1917년 노동자와 군인들이 자신들을 대표하는 소비에트를 따로 갖고 있다가 10월혁명이 끝난 뒤 이 두 평의회를 하나로 합쳤다. 모소베트는 고르바초프 집권 시절에 선거개혁이 단행되고 나서야 소련 공산당의 지도·통제에서 벗어났다. 페레스트로이카 이전에는 2년 6개월마다 선출되는 1,000명의 대의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편 시 당국의 실질적 행정업무는 이소폴콤(Isopolkom)이라는 모소베트의 실행위원회가 관장했다. 모소베트에서 선출된 사람들로 구성된 이 기구는 교통·건강·문화·교육·산업·무역 등을 비롯한 수많은 일상적인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여러 부서와 정부기관들을 감독했다. 최근에 일어난 대변동에도 이 부서들은 여전히 그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각 행정구역은 독자적인 의회와 실행위원회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의회들과 모소베트 사이에는 당연히 갈등이 존재했다.
1987년 및 그후에 잇달아 이루어진 선거개혁으로 지역 공산당 사무국의 역할이 상당히 약화되었다. 그결과 지역 소비에트들이 그전보다 더 많은 권한을 지니게 되었다. 1990년 보리스 옐친이 공산당에서 탈퇴했고, 그를 따라 모스크바 시장도 탈당했다. 그뒤 계속된 선거에서 개혁주의자들이 승리하여 모소베트를 장악했다. 초기 개혁조치의 하나로 모스크바 소비에트는 모스크바의 모든 주택 채권을 평의회가 소유하고 있다고 발표하고 주민들에게 그 소유권을 넘겨주려는 노력을 보였으며 이어서 이름바꾸기 계획을 강력하게 추진하여 많은 거리·공원·지역들이 1917년 이전의 이름으로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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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모스크바의 정치와 행정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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