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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미국 남북전쟁 당시 제임스 강 어귀에 있는 항구인 버지니아 주 햄프턴로즈에서 벌어진 해전(1862. 3. 9).
Battle of Hampton Roads라고도 함.
역사상 최초로 철갑선(鐵甲船)끼리 맞붙어 해전의 신기원을 이룬 전투로 유명하다.
남군은 전통적인 증기 프리깃 함(艦)인 북군의 '메리맥호'를 노퍽 해군기지로 인양한 다음 상부 갑판을 철제로 덮어 새로 '버지니아호'라 이름붙였다. 임시로 수리된 80.2m의 갑판은 당시 한 기록에 의하면 '물 위에 떠 있는 창고지붕'을 닮았다고 한다. 버지니아호는 프랭클린 뷰캐넌 선장의 지휘 아래 다른 남군 전함 수척의 지원을 받아 3월 8일 버지니아 주 뉴포트뉴스 앞바다에서 북군의 목제(木製) 함선들을 격침시켰다.
이때 북군의 슬루프형 군함 '컴벌랜드호'와 대포 50문을 갖춘 프리깃 함 '콩그레스호'가 파괴되었고 다른 프리깃 함 '미네소타호'는 좌초당했다.
그날 밤 존 워든 대위가 이끄는 북군의 철갑선 '모니터호'가 도착했다. '뗏목 위의 양키 치즈 상자'라고 불린 이 배는 흘수선(吃水線) 갑판과 회전식 포탑을 갖춘 52m 길이의 배로,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전함이었다. 3월 9일 남군 및 북군의 지원병들이 근처에 있는 전함 갑판과 양편 해안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극적인 해전이 벌어졌다.
오전 8시가 조금 지나서 버지니아(메리맥)호는 미네소타호에 포격을 시작했고, 이어 북군의 모니터호가 나타났다. 전함들은 서로 엇갈려 왔다갔다 했는데, 양편 승무원들이 모두 훈련이 부족했기 때문에 포격은 효과적이지 못했다. 북군의 모니터호는 7~8분에 1번 포격할 수 있었지만 덩치가 큰 버지니아호보다 빠르고 기동성이 우수했다. 교전중 모니터호의 조타실이 포탄에 맞아 철제 파편이 워든 대위의 눈에 들어갔고, 배는 얕은 곳으로 방향을 바꿨다. 버지니아호의 남군 지휘관들은 모니터호가 재기불능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미네소타호를 재차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버지니아호는 탄약이 떨어지고 선수(船首)에 구멍이 났으며 증기기관을 계속 가동시키는 데 어려움이 생겼다. 12시 30분경 버지니아호가 해군기지로 돌아감으로써 전투는 끝났다.
3월 8일 버지니아호가 거둔 멋진 승리는 목제 전함시대의 종말을 뜻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남군의 사기를 높여 북군의 해안 봉쇄망을 뚫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생기게 했다. 그러나 이어 3월 9일에 일어난 두 철갑선 사이의 전투에서는 대체로 모니터호가 승리를 거둔 것으로 판정되어 북군에서도 안도와 환희가 뒤섞인 감정이 일어났다. 이 해전은 전세에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양 진영의 사기에는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남군이 노퍽 기지에서 철수한 뒤인 1862년 5월 9일 버지니아호는 선원들에 의해 부숴졌다. 한편 모니터호는 16명의 선원과 함께 1862년 12월 31일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해터러스 앞바다에서 태풍을 만나 침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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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모니터와 메리맥 전투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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