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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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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서울의 대표적인 상업지구이다. 일제 때 명치정이었다가 해방 후 1946년 명동으로 개칭했다.
조선시대에는 주택지였으나 일제 때 충무로 1·2가를 상업지구로 개발하면서 인접지역인 명동도 상업지구가 되었다. 그러나 명동이 현재의 모습으로 된 것은 6·25전쟁 직후 토지계획정리추가지구로 결정되면서부터이다. 1956년 이후 고층빌딩이 들어서고 양잠점, 양화점, 귀금속, 대형백화점, 금융기관 등이 밀집되어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의 쇼핑지로 애용되어왔다.
강남의 압구정동이 새로운 패션 중심지로 등장하면서 위축되었으나 상인들을 중심으로 명동의 위상을 되찾고자 1982년부터 명동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2014년 관광특구로 지정되었으며, 중국과 일본 등 외국관광객들이 많이 찾으면서 쇼핑 관광지의 면모를 되찾아가고 있다.

법정동으로는 명동 1·2가, 정동 1가, 충무로 1·2가, 남산동 1·2·3가와 예장동의 일부 지역이 포함된다. 서울의 대표적인 상업지구로 금융업, 도·소매업, 패션 관련업, 기타 서비스업 등이 집중·분포하고 있다.

명동

명동거리 , 서울시 중구 행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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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한성부의 행정구역 중의 하나인 명례방의 명자를 따서 지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명치정으로 불리다가 해방 후 1946년에 밝은 마을, 밝은 고을이란 뜻의 명동이라 개칭했다.

조선시대의 명동은 주택지였으나 일제강점기에 충무로 1·2가를 상업지구로 개발하면서 그 인접지역인 명동도 점차 상업지구로 발전했다. 그러나 명동이 오늘날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은 6·25전쟁 직후 정부가 전재복구재건을 위한 토지계획정리추가지구로 결정한 이후부터이다. 1956년 이후 도시재개발로 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고급양잠점, 양화점, 귀금속, 대형 백화점, 각종 사무실, 금융기관의 본사, 쇼핑 센터 및 전문점들이 밀집되어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의 쇼핑 관광지로 애용되어왔다.

한국 유행의 첨단지역으로서 휴일은 물론 평일에도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많은 금융기관이 여의도로 이전해가고, 영등포·청량리·미아리·상계·반포·여의도 등 서울의 부도심이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강남지역의 개발과 함께 대형 백화점과 상가 등이 새로이 조성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특히 압구정동 일대가 새로운 패션 중심지로 등장함에 따라 최신 유행의 산실이라는 명동의 기능은 점차 퇴색해가고 있다. 따라서 명동의 상인들은 보다 많은 고객을 확보하고 과거 명동의 위상을 되찾고자 1982년부터 상인과 시민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명동축제를 봄·가을로 개최하고 있으며, 국제적인 쇼핑 관광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고자 노력하고 있다.

1990년 현재 명동의 업종별 산업구성은 도·소매업이 전체 산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다음으로 제조업과 금융·보험·사회 서비스 등의 서비스업이 주류를 이룬다. 명동의 면적은 0.44㎢, 인구 3,208명, 인구밀도 7,291명/㎢이지만 이는 상주인구를 토대로 한 것이고 실제로는 하루 1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드나든다. 그러나 명동의 상주인구는 해마다 줄어들어 야간에는 인구공동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명동에는 명동성당, 서울 중앙우체국,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한국본부, 중국대사관 등의 주요기관들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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