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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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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BC 46 |
국적 | 로마 |
요약 로마의 정치가.
대(大)폼페이우스와 율리우스 카이사르 사이의 권력투쟁에서 자신의 사위 폼페이우스를 열렬히 지지했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의 아들인 그는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피우스의 양자로 들어갔으며 BC 60년 뇌물사건으로 법정에 섰을 때 유명한 웅변가 키케로의 변호를 받았다.
BC 52년 딸 코르넬리아의 남편 폼페이우스의 영향력에 힘입어 콘술(집정관)이 되었다. BC 49년 1월 메텔루스는 원로원에서 카이사르가 자기 군대의 해산을 거부한다면 국가의 적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뒤이은 내전(BC 49~45: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와 원로원의 보수파 귀족[옵티마테스]에 맞섬) 때 시리아 총독을 맡았고, 테살리아의 파르살루스 전투(BC 48)에서 중앙부대를 지휘했으나 여기서 폼페이우스군은 졌다. 그뒤 아프리카에서 원로원파 병력을 이끌었으나 BC 46년 타프수스 전투에서 카이사르에게 결정적으로 패해 스페인으로 달아나려다 붙잡히자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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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메텔루스 피우스 스키피오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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