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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798. 11. 3, 미국 버지니아 페어팩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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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71. 4. 28, 버지니아 알렉산드리아 |
국적 | 미국 |
요약 버지니아 출신 연방 상원의원.
남북전쟁이 일어난 뒤에는 남부연합 정부의 외교관을 지냈으며 '트렌트호 사건'으로 북군의 포로가 되었다.
버지니아 동부 출신 귀족으로 자랐으나 펜실베이니아대학교를 나온 뒤 윌리엄앤드메리대학에서 법을 공부했으며, 그뒤 버지니아의 외딴 시골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1826~32년(1827 제외) 주의회 의원으로 일했고 1차례 연방의회의 하원의원(1837~39)을 지낸 뒤 1847년 상원의원의 보궐선거에 당선되었다. 1849, 1855년 상원의원으로 재선되었고 주권(州權)의 확대를 주장하는 상원 내의 남부출신 민주당원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1860년 에이브러햄 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남부의 연방 탈퇴를 옹호했고 상원의원직에서 물러나 남부연합에 가담했다.
그는 남부연합의 영국 사절로 일해달라는 제퍼슨 데이비스 대통령의 요청을 받아들여 존 슬라이델과 함께 영국 선박 '트렌트호'를 타고 영국을 향해 떠났으나 해상에서 연방군의 해군함정에게 나포되었다. 결국 이들은 2개월간 보스턴에서 투옥생활을 했다. 트렌트호 사건으로 북부와 영국 간의 외교관계가 단절 직전까지 갔으나 1862년 1월 1일 링컨 대통령은 메이슨과 슬라이델을 석방시켰다. 그뒤 두 사람은 유럽으로 떠났다. 영국에 도착한 메이슨은 남부연합의 주장에 대한 공식적인 지지를 얻어내려 했으나 소득이 거의 없었다.
그는 1866년이 되어서야 다시 북아메리카로 돌아왔고 남부연합의 고위 관리로서 체포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1868년까지 캐나다에 있었다. 그러나 1868년 앤드루 존슨 대통령이 2번째 사면령을 내림에 따라 버지니아로 돌아와 여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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