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다음백과

메르넵타

다른 표기 언어 Merneptah
요약 테이블
출생 미상
사망 1204
국적 이집트

요약 리비아의 침략을 물리친 이집트의 왕(BC 1213~BC1204 재위).
Meneptah라고도 씀.

장수한 람세스 2세의 13번째 아들로 BC 1213년경 왕위에 오를 때는 거의 60세였다. 이집트는 람세스 2세 통치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군사력이 약화되었다. 메르넵타는 통치 초기에 아슈켈론·게제르·예노암 등 팔레스타인 지역의 도시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해야 했다(이 시기의 전투를 묘사한 부조가 알카르나크에 있는데 전에는 이것을 람세스 2세의 치적으로 보았음). 그러나 메르넵타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서부 국경지대였다.

리비아인들은 삼각주 오아시스 서쪽 완충지대를 뚫고 들어와 이집트 영토를 침범했다. BC 1209년경 메르넵타는 해상민족이 삼각주 끝에 있는 거대한 행정·종교 중심지인 멤피스와 헤리오폴리스를 공략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들은 소아시아와 에게 해(海) 지역에서 밀려나 중동지역을 떠돌면서 리비아와 연합하여 전력을 강화했다.

메르넵타는 위험에 빠진 멤피스의 수호신 프타에게서 꿈에 계시를 받은 후 군대를 정렬해 다가올 싸움에 대비했다. 정확한 전투지점은 아직도 논란거리이지만, 이 전쟁에 대한 4개의 사료를 종합해보면 삼각주 끝의 어느 서쪽 지역으로 생각된다. BC 1209년 어느 봄날 새벽 리비아인들과 그 동맹군들이 나타났고, 극렬한 전투가 예상되었다.

그러나 메르넵타는 보병대와 전차들을 후방에 두고 궁사(弓士)들을 내보냈다. 6시간 동안 궁사들은 적을 대량으로 학살했고, 이집트의 보병과 전차부대는 지휘관의 도망으로 우왕좌왕하는 적들을 섬멸했다.

이 전투에서 이집트는 리비아와 해양민족을 9,400여 명이나 죽이고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집트는 평화를 되찾았으며, 메르넵타는 이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거대한 기념판 4개를 새기도록 지시했다. 이중 유명한 '이스라엘 스텔라'는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났던 반란을 진압했던 사실에 대한 기록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다.

메르넵타는 이스라엘 민족도 싸워서 이긴 민족 가운데 하나로 여겼다. 히브리 학자들은 이 자료에 기록된 상황이 〈구약성서〉의 〈출애굽기〉 후기에서 〈판관기〉까지의 시기와 거의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수단에서 발견된 자료에도 메르넵타 왕이 팔레스타인을 정복한 후로 추정되는 시기에 하(下)누비아의 반란을 진압했던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는 기념물을 거의 세우지 않았지만 이집트의 국방·외교 면에서는 선왕(先王) 람세스 2세에 못지 않은 업적을 남겼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출처

다음백과
다음백과 | cp명Daum 전체항목 도서 소개

다양한 분야의 전문 필진으로 구성. 시의성 이슈에 대한 쉽고 정확한 지식정보를 전달합니다.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왕과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백과사전


[Daum백과] 메르넵타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