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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그리스 남부 아티카 지역 서부, 사로니코스 만 북쪽 연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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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23,456명 (2022년 추계) |
면적 | 330.3km² |
언어 | 그리스어 |
대륙 | 유럽 |
국가 | 그리스 |
요약 그리스 아티카 주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와 사로니코스 만을 끼고 있는 고대·현대 정착지. 현대의 메가라는 고대도시의 아크로폴리스로 쓰였던 두 구릉의 남쪽 경사면에 있다. BC 8세기에 상업식민지들을 시칠리아 섬에 세웠고, BC 676년 북쪽과 동쪽으로 보스포루스 강과 마르마라 해를 끼고 칼케돈에 식민지를 만들었다. BC 630년 이후 메가라의 역사는 주로 강력한 이웃인 아테네에게 당하기만 하던 싸움의 역사였다.
현대의 메가라는 고대도시의 아크로폴리스(요새)로 쓰였던 두 구릉의 남쪽 경사면에 있다. 초기 정착민들은 BC 1100~1000년경 도리아인이 침략하면서 멸절되었다.
메가라는 BC 8세기에 상업식민지들을 시칠리아 섬에 세웠고, BC 676년 북쪽과 동쪽으로 보스포루스 강과 마르마라 해를 끼고 칼케돈에 식민지를 만들었다. BC 660년에 메가라의 식민지가 된 비잔티움은 그뒤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 되었다. 그러나 주요식민지는 소아시아 북서부의 비티니아 왕국에 있던 아스타쿠스·헤라클레아와 크림 반도에 있던 2번째 헤라클레아였다.
BC 630년 이후 메가라의 역사는 주로 강력한 이웃인 아테네에게 당하기만 하던 싸움의 역사였다. BC 570년경 아테네에게 살라미스 섬을 빼앗겼으며 BC 461년 강제로 아테네의 방어 원조를 받아들인 뒤 BC 446년에 반란을 일으켰다. BC 432년에는 나라 전역에 걸쳐 아테네가 내린 무역금지 명령으로 곤욕을 치렀다. 주변지역이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404) 동안 아테네에게 정복되었지만 메가라에 있는 성채는 함락되지 않았다. BC 4세기에 약간의 번영을 되찾은 데 비해 정치적으로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다.
이 도시는 로마 시대에도 존속했지만 AD 2세기 그리스 여행가인 파우사니아스는 메가라인들을 특별히 일컬어 하드리아누스 황제(117~138 재위)가 번영시키지 못한 유일한 사람들이라고 적고 있다. 그뒤 수세기 동안 주요지역으로 남아 있었고 1500년 베네치아인의 침략으로 인구가 많이 감소했다. 여기에서 태어난 소피스트 철학자 에우클레이데스(BC 450~380경)가 스토아 학파 사상에 영향을 미친 메가라 철학 학파를 창설했다.
농업과 가금 사육의 주요중심지인 오늘날의 메가라는 피라이우스에서 코린트에 이르는 해안지역이 급속히 산업화되고 있어 혜택을 입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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