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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03. 3. 16, 미국 뉴욕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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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2001. 10. 5, 워싱턴 D.C. |
국적 | 미국 |
요약
미국의 정치가·외교관.
별칭은 Mike Mansfield.
상원의 민주당 다수파 지도자(1961~77)였으며 주일 미국대사(1977~88)를 역임했다. 몬태나에 있는 친척 집에서 자란 맨스필드는 8학년을 다 마치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두었다. 14세의 나이로 미해군에 입대해 제1차 세계대전중 수송부대에서 복무했으나 나이가 탄로나 제대조치를 당했다. 그 뒤 육군에 입대했다가 해병대로 옮겨 여러 외딴 전초기지에서 복무했다.
그는 1920년대 대부분을 몬태나에 있는 구리 광산에서 일하며 보냈는데 그의 아내가 학업을 계속할 것을 설득해, 1928년 고등학교, 1933년 대학 졸업장을 차례로 취득했다. 1934년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몬태나주립대학교의 교직원이 되었으며, 이 대학에서 나중에 극동과 라틴아메리카 담당 정치학 및 역사학 교수가 되었다.
1940년 그는 민선 공무원직에 처음 입후보해 3명이 입후보한 민주당 예선에서 3위를 했다. 그러나 1942년에는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하원 외무위원회에서 적극적으로 활약했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과 해리 S.트루먼 대통령에게 중국과 일본에 대한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해 조언했으며, 국내문제에 관해서는 언제나 자유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1952년 상원의원 조지프 R. 매카시가 그에게 용공적이라는 비난을 퍼부었는데도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상원 국제관계위원회의 위원으로 명성을 높인 그는 1957년 다수당 원내총무가 되었다. 1961년 린든 존슨이 부통령이 되자 맨스필드는 존슨의 뒤를 이어 상원 다수파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1958, 1964, 1970년에 상원의원으로 재선되었으며, 1964년 대통령 선거 때는 존슨의 부통령 후보 제의를 거절했다. 미국 정계의 진보파 기수로 알려졌던 그는 1960년대에 미국의 지나친 베트남전쟁 개입을 비판했으며, 1966년 베트남 평화회의를 제안한 바 있고 1971년에는 휴전과 베트남 주둔 미군의 단계적 철수를 요구하는 법안을 지지했다. 한국의 통일문제에 관해서는 1960년 10월 '오스트리아식' 중립화 조건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제안했으며, 그후에도 주한미군의 감축 또는 궁극적인 철수를 주장하면서 "미국·소련·중국·일본 등 4강의 집단안보에 의해 휴전협정에 대신할 만한 평화체제를 유지해야 하며, 가능하다면 중립화까지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1973년 선전포고 없는 외국의 무력분쟁에 미국이 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는 비상대권법안(war powers bill)을 지지했다. 맨스필드는 워터게이트 사건의 조사기간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집요하게 비판했다. 1976년 그는 상원에서 은퇴했지만, 인도차이나에서 실종된 미국인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위원회의 일원으로서 이듬해초 공직에 복귀했다. 1977년 지미 카터 대통령은 맨스필드를 주일 미국대사로 임명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2번의 임기 동안 자리를 지키다가 1988년에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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