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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316, 노르웨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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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374. 12. 1, 스웨덴 |
국적 | 스웨덴 |
요약 스웨덴의 왕(1319~63 재위).
노르웨이의 왕(1319~55 재위)으로는 망누스 7세이다. 덴마크 왕 발데마르 4세를 비롯한 여러 외국 지도자들의 지원을 받은 귀족들의 반란에 맞서 스웨덴 군주권을 지키기 위해 힘썼다.
노르웨이 왕 호콘 5세의 딸 잉게보르와 스웨덴 왕 비레르 망누스의 동생인 에리크 공작 사이의 아들로, 호콘 5세가 죽은(1319) 뒤 노르웨이와 스웨덴 두 나라의 통치자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가 1332년 성년이 될 때까지는 섭정단이 두 나라의 통치를 대신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스웨덴에서 보냈기 때문에 1343년 노르웨이의 고위 귀족들은 그의 아들 호콘이 왕위를 계승하도록 주선했고 결국 1355년 그가 노르웨이 왕위에서 퇴임하고 아들이 호콘 6세로 왕위에 올랐다. 얼마 뒤 망누스는 옛 덴마크의 영토 스코네(지금의 스웨덴 최남단에 있음)를 사들이기 위해 세금을 올렸으므로 많은 스웨덴 귀족들의 반대를 받았다.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합해 전국적으로 새로운 법전을 도입했고(1350), 1352년에는 토지를 가진 귀족들과 교회의 경제력을 구속해 더욱 귀족들의 분노를 샀다. 아들 에리크가 그를 반대하는 세력의 선봉자로 나섰으며, 이들은 덴마크 왕 발데마르 4세의 지원을 얻고 1356년 이후에는 교황 인노켄티우스 6세에게까지 지지를 받았다.
결국 그는 스웨덴 영토를 절반 가량 에리크에게 양도할 수밖에 없었으며 귀족세력에도 힘이 밀리기 시작했다. 그뒤 그는 발데마르 4세와 평화조약을 맺고 아들 호콘 6세와 발데마르의 딸 마르그레테의 결혼을 주선해(1359) 뒷날 노르웨이·스웨덴·덴마크가 칼마르 연방으로 연합하는(1397) 길을 열었다.
망누스는 자신을 배신하고 스코네를 되찾아 간(1360) 발데마르 4세와 다시 손을 잡은 뒤 스웨덴 고위 귀족들의 세력을 꺾으려 했으나, 귀족들은 메클렌부르크의 알브레히트에게 스웨덴 왕위를 제의하는 한편 망누스에게 군사 공격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잇달은 전투에서 망누스는 포로가 되었으며 1371년 노르웨이로 떠날 때까지 사로잡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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