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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055. 8. 6/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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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092. 11, 바그다드 |
국적 | 셀주크 |
요약 셀주크 왕조의 3번째 술탄.
셀주크의 술탄 중 가장 유명하다.
1072년 대(大)와지르(총리)인 니잠 알 물크의 후견하에 아버지 알프 아르슬란의 왕위를 이어받았다.
니잠 알 물크는 죽을 때까지 이 제국의 실질적인 관리자였다. 말리크 샤는 먼저 삼촌인 카우르드의 반란과 호라산의 부하라에 있는 카라한 왕조의 도전을 물리쳐야만 했다. 그 다음에는 전쟁보다 적들에 대한 외교와 그들 사이의 분쟁을 통해 셀주크 제국을 확대하고 강화했다. 또한 상(上)메소포타미아와 아제르바이잔의 옛 예속국들을 제압하고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을 차지했다. 또 카라한 왕조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고 메카와 메디나, 예멘 및 페르시아 만 지역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지배력을 발휘했으며 소아시아의 투르크멘족에 대한 지배권을 두고 경쟁관계에 있던 다른 셀주크 왕조와 경합했다.
말리크 샤는 문학·과학·예술에 큰 관심을 보였는데 수도 이스파한의 화려한 사원들과 오마르 하이얌의 시, 그리고 역법 개혁 등은 특기할 만하다. 백성들은 국내의 평화와 종교의 관용을 누렸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함 뒤에는 그늘도 있었다. 호라산 총독으로 있던 동생 타카시가 반란을 일으켰다가 체포되어 눈이 머는 형을 받았다.
또 하산에 사바흐가 이끄는 암살단이 정통파 이슬람교도를 상대로 테러 활동을 벌여 1092년에 니잠 알 물크를 살해했다(→ 아사신). 니잠 알 물크는 죽기 전에 말리크 샤의 둘째 부인이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세우려는 생각에 반대하고 첫째 부인의 맏아들을 후계자로 세워야 한다는 주장에 편들어 말리크 샤와 다소 멀어진 상태였다. 더욱이 바그다드에 있는 칼리프가 말리크 샤의 딸과 결혼하고서도 그녀를 무시했기 때문에 칼리프와 말리크 샤의 관계도 좋지 않았다. 말리크 샤는 칼리프에게 바그다드를 떠나도록 명령했지만 도리어 그 자신이 곧 갑작스럽게 죽었다. 그후 제국은 왕실 내부의 불화로 분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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