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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발간된 친일적인 일간신문. 창간목표로는 '민족협회 정신을 고무하고 재만 조선계의 국민적 자각을 강화하여 조선계의 황민화 촉진에 적극적인 참획'을 내걸었다. 국내에서도 활동하기 위해 경기도에 지국과 부서를 개설하기도 했으며, 광복 때까지 신문을 발행하여 박영준의 <쌍영>, 염상섭의 <개동> 등의 소설을 싣기도 했다.
일제는 3·1운동 이후 한국인이 많이 이주하여 살던 만주에 친일적인 한국어 신문을 발간하도록 허용·지원했는데, 창간 순서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만주일보〉(1919. 7), 일본어 신문인 〈간도신보〉의 한국어판(1921. 4), 〈만선신보〉(1924. 5), 〈간도일보〉(1924. 12) 등이다. 이어 일제는 만주사변 후 '국책적 견지에서'라는 명목으로 1933년 8월 25일에 새로운 한국어 신문 〈만몽일보 滿蒙日報〉를 창간했다.
〈만몽일보〉는 1936년 11월 〈간도일보〉를 매수·통합하고, 간도 지사로 운영하게 됨에 따라 만주에서 유일한 한국어 신문이 되었다. 1937년 10월에 실업가 이용석(李容碩)이 새로 사장에 취임하면서 주식회사로 개편하고 〈간도일보〉를 본사에 합병했다. 그해 10월 21일 제호를 〈만선일보〉로 바꾸었다. 부사장은 이성재, 주필은 염상섭, 편집인은 박팔양이 맡았다. 조간 8면으로 발행했다. "민족협회 정신을 고무하고 재만 조선계의 국민적 자각을 강화하며 조선계의 황민화 촉진에 적극적인 참획"을 창간목표로 내세웠다.
1938년말에 일제로부터 연 6만 4,000원의 보조를 받게 되자 지면을 14단제로 바꾸고 조·석간을 발행했다. 직제를 개편하여 주필제를 폐지하고 편집국장에 염상섭, 정치경제부장에 홍양명, 사회부장에 박팔양 등을 임명했다. 아울러 경기도에 지국과 지방부를 개설하는 등 국내에도 적극적인 진출을 꾀했으며, 최남선·김경재·박석윤·진학문 등을 영입했다.
1939년 2월에는 이용석이 사임하고 부사장이었던 이성재가 사장이 되었고, 1940년 1월에는 염상섭이 물러나고 홍양명이 국장 대리가 되어 편집국장의 일을 맡아보았다. 1945년 8·15해방 때까지 발행되었다. 박영준의 〈쌍영 雙影〉, 염상섭의 〈개동 開東〉, 안수길의 〈북향보〉 등의 소설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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