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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752. 8. 25, 바이에른 넨슬링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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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28. 10. 22, 오스트리아 장크트푈텐 |
국적 | 오스트리아 |
요약 오스트리아의 군인·군사령관.
울름 전투와 아우스털리츠 전투에서 나폴레옹과 싸워 패배했다.
1770년에 오스트리아 기병연대에 들어가 7년 후에 장교가 되었으며 짧은 기간의 바이에른 왕위계승전쟁에 참전했다. 1778년 중위로 진급했으며 1785년에는 마크 폰 라이버리히라는 성(姓)으로 귀족이 되었다. 혁명전쟁을 치르고 있던 프랑스에 맞서 네덜란드에서 싸웠고 부원수가 된(1797) 뒤 1798년에 나폴리군 지휘를 맡았다.
그러나 자신의 부하들에게 쫓겨 몸을 피해 프랑스 병영으로 탈출, 전쟁포로로 파리로 이송되었으나 2년 뒤 변장하고 탈출했다.
그뒤 몇 년 동안 군대에 복귀할 수 없었으나 1804년 병참감(兵站監)이 되어 프랑스와의 전쟁에 대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는 서둘러 군대개혁을 시도했고 1805년 바이에른에서 이름뿐인 총사령관 페르디난트 대공을 대신해서 반나폴레옹군의 실질적인 사령관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지위는 불확실했고 동료들에게서도 거의 권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결국 계산착오와 통제력 부족으로 오스트리아는 울름에서 무참히 패배했다. 여기서 그는 완전히 포위되어 적어도 5만 명의 병사를 포로로 만들었고(10. 15) 12월 2일의 아우스털리츠 전투에서는 나폴레옹에게 가장 큰 승리를 안겨주었다.
아우스털리츠의 전투가 끝난 뒤 마크는 1806년 2월에서 1807년 6월까지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계급, 지휘권, 마리아 테레지아 훈장 등의 박탈을 선고받고 2년 동안 투옥당했다. 1808년에 석방되었고 1819년 동맹군의 최종적인 승리로 무참한 패배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자 복권되어 계급과 마리아 테레지아 훈장을 돌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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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마크 폰 라이버리히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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