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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961~1150년에 수도 알힐라로부터 중앙 이라크 지역을 통치했던 이슬람 아랍 왕조.
마지아드가(家)는 아사드 지방의 베두인족에 속했는데, 10세기 중엽 히트와 쿠파 지역 사이에서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정착했다. 오래지 않아 바그다드의 부와이조 술탄인 앗 다울라가 알리 1세 이븐 마지아드를 그 지역의 수장으로 승인했다.
알리는 1018년 세 아들을 남기고 죽었다. 세 아들은 저마다 권력을 잡기에 열심이었는데 공식적으로는 두바이스 1세(1018~81 재위)가 계승했다. 두바이스의 동생 알 무칼라드가 그를 축출하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도움을 청하러 우카일 왕조의 수도 모술로 갔다.
1030년 우카일 왕조와 부와이 왕조군의 지원을 받아 무칼라드는 두바이스를 패주시키고 그 영토를 황폐화시켰다. 그러나 두바이스는 자신이 부와이 왕조의 잘랄 앗 다울라에게 조공을 바친다는 조건으로 수도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한편 셋째 사비트는 바그다드의 아르슬란 알 바사시리의 지원을 받아 권력을 빼앗기 위해 1033년경에 2차례 두바이스를 패배시켜 영토의 일부를 할양받았다. 두바이스는 1057년경 토그릴 베그 지배하의 셀주크인들의 침략에 저항해 스스로 알 바사시리와 연합했다.
만수르의 짧은 통치(1081~86)에 뒤이어 마지아드 왕조의 활동이 강화되었다. 처음엔 셀주크의 통치자 베르크 야루크와 동맹을 맺었고, 1101년경부터 베르크 야루크의 형제인 무하마드와 동맹을 맺은 사다카 1세(1086~1108 재위)는 점차로 히트·와시트·바스라·타크리트 지방을 장악해 이라크 대부분 지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1102년 수도 알자미안을 확장하고 요새화하여 알힐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사다카는 무하마드에게 너무 위협적인 존재였으므로, 1108년초 그가 보낸 셀주크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아버지가 전사하자 두바이스 2세(1108~35 재위)가 왕위를 계승했는데, 그는 십자군에 맞서 싸운 위대한 군인이자 아랍 시가의 옹호자로 부각되었다. 두바이스가 죽자 3형제간에 서로를 권력에서 밀어내려는 싸움이 벌어져 마지아드 왕조의 세력은 약화되었다. 1150년 마침내 셀주크의 술탄 마수드에게 굴복했으며, 마수드는 알힐라를 그의 장군에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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