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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네케

다른 표기 언어 Friedrich Meinec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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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62. 10. 30, 프로이센 잘츠베델
사망 1954. 2. 6, 베를린
국적 독일

요약 독일의 역사가.

근대 지성사의 태두인 스승 빌헬름 딜타이와 더불어 20세기 전반의 대표적 역사가로 꼽힌다. 슈트라스부르크대학(1901)·프라이부르크임브라이스가우대학(1906)·베를린대학(1914~28)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1896년부터 나치 정권에 의해 해임당한 1935년까지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 잡지 〈히스토리셰 차이트슈리프트 Historische Zeitschrift〉 편집장으로 일했다.

히스토리셰 차이트슈리프트(Historische Zeitschrift)

ⓒ Heinrich v. Sybel/wikipedia | Public Domain

마이네케의 저서에는 비스마르크와 강력한 국가에 대한 숭배자였다가 과거 독일의 인문주의적 가치를 숭상하는 중도적 자유주의자로 변신하는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 또 〈세계시민주의와 민족국가 Weltbürgertum und Nationalstaat〉(1908)에서는 독일이 18세기의 세계시민주의를 극복하고 19세기에 들어 민족주의로 나아가는 과정을 낙관적인 관점에서 추적하고 있다. 〈현대에서의 국가이성의 이념 Idee der Staatsräson in der neueren Geschichte〉(1924)은 권력정치에 대한 입문서인 동시에 비판서이다.

주권국가는 가장 높은 윤리적 가치의 구현체라는 개념과 정치적 필요에 따라서는 도덕규범의 파괴도 정당하다는 식의 생각에 의문을 제기한 이 책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그 자신도 말려든 권력과 도덕 사이의 모순을 반영하고 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을 독일 지배계급이 파산한 증거로 보았으며, 철저한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했기 때문에 바이마르 공화국에 대해 열광적이진 않아도 충실한 옹호자가 되었다.

그의 저서 〈역사주의의 탄생 Die Entstehung des Historismus〉(1936)은 잠바티스타 비코에서 레오폴트 폰 랑케에 이르는 역사주의의 등장을 조명한 책이다. 마이네케는 또한 개개인의 사적 관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한 개인을 단지 국가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나치에 대한 분명한 반대 입장을 암시하기도 했다. 또 〈독일의 파국 Die deutsche Katastrophe〉(1946)에서는 프로이센 국가와 같은 존재와 세력이 히틀러와 나치의 바탕을 마련했다고 비난했다.

제2차 세계대전 뒤에는 베를린자유대학의 초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말년에는 역사이론의 각종 주제에 관해 수많은 논평을 썼는데, 역사철학 체계를 도식화하려는 시도는 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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