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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791. 2. 11, 콘스탄티노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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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65. 8. 18, 그리스 아이기나 |
국적 | 그리스 |
요약 그리스의 정치가.
그리스의 독립운동을 이끌었으며 독립을 이룬 뒤에는 최고 지도자로 활동했다.
투르크 제국의 관리로서 오랜 명문가인 그리스의 파나리오트 가문(콘스탄티노플의 그리스 지구에 살았음)의 자손으로 왈라키아(지금의 루마니아에 있음) 총독(hospodar) 이오안니스 카라디아의 비서관을 지냈으며(1812~17) 나중에는 총독과 함께 망명했다. 그러나 1821년 투르크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킨 그리스 혁명가들과 합류했다(→ 투르크제족).
파나리오트 출신이어서 동료들에게 의심을 받기도 했으나 곧 그리스 서부의 미솔롱기의 지방정부수반이 되었다. 1821년 12월부터 1822년 1월까지 에피다우로스에서 열린 제1차 국민의회 의장이 되었고, 헌법 초안 작성을 지도했다. 그리스 공화국의 첫번째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새 정부는 거의 힘이 없었으므로 미솔롱기로 돌아와 그곳에서 투르크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냈다(1822. 11~1823. 1).
그는 미솔롱기의 총독으로 민족정부를 대표하여, 그리스 독립을 위해 싸웠던 유격대원인 영국의 유명한 시인 바이런 경을 맞이했다. 그는 영국의 보호(1825. 6~7)를 요청하는 그리스인들의 요구에 찬성하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친(親)영국 정당의 주요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친러시아파인 이오안니스 카포디스트리아스 백작이 대통령을 지내는 동안(1827~31)에는 무시당했으나 1832년에 재무장관, 이듬해에는 그리스의 초대 왕인 오토 밑에서 총리가 되었다. 그뒤 뮌헨·베를린·런던·콘스탄티노플에서 외교사절로 활동했다.
국왕의 요청을 받고 1841년 2월 런던에서 돌아와 외무장관이 되었으며 얼마 후 내무장관으로서 정부를 구성하는 임무를 맡았다(1841. 7). 그러나 그의 개혁정치는 절대왕정 앞에서 곧 실패했으며 1841년 8월 20일 사임하지 않을 수 없었다. 1843년 그리스 혁명 뒤 다시 총리가 되었다(1844, 18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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