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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2011년 국민전선의 대표가 된 프랑스의 정치인.
별칭은 Marion Anne Perrine Le Pen. 마린 르 팽은 정치가인 장 마리 르 팽의 세 딸 가운데 막내이다. 어린 시절은 아버지의 정치적 사건으로 얼룩졌다. 아버지 장 마리 르 팽은 외국인 혐오와 반유대주의 견해에 대한 옹호 입장을 밝혔고, 1976년 가족이 사는 아파트에 심각한 폭탄 테러를 당했다. 이외에도 아버지의 견해로 인해 비난을 받고 자랐으며, 이런 성장기의 사건은 이후 정치적 견해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파리2대학교에서 1991년에 법학을 전공했고, 1992년에 형법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 해에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고, 1992~98년 파리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1998년 그녀는 우파 정당 국민전선(National Front Party)에 입당했다. 국민전선은 1972년에 그녀의 아버지가 주도하여 설립했며, 프랑스의 주류 보수 정당들에 맞서는 우파 정당이었다. 그녀는 당의 법사위원장을 역임하다가 2003년 국민전선의 부대표가 되었다.
그 다음 해인 2004년, 마린 르 팽은 유럽의회 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러내 아버지 장 마리 르 팽과 함께 유럽의회의 비동맹연합 측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국민전선에서 고위직을 맡았고, 2007년에는 아버지의 대통령 선거운동을 지휘했다. 마린 르 팽은 노르파드칼레 지방 정부에서 여러 직책을 두루 맡았고, 2009년 지방선거에서 큰 성과를 거두는 등 국민전선을 이끌어갔다.
르 팽이 스스로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국가적 인물로 부상하면서, 그녀는 아버지와 당의 극단적인 견해로부터 약간 거리를 두었다.
르 팽은 국민전선이 수립한 반이민 입장을 포용하는 반면, 프랑스 민족주의로서의 당의 전통적으로 반대해 온 강한 유럽연합에 대한 회의적인 견해를 쇄신하고, 과거에 국민으로부터 외면 받아온 반유대주의 입장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호감이 가는 외모와 침착성, 아버지로부터 배운 명민한 정치적 감각 덕분에 마린 르 팽은 2011년 어렵지 않게 아버지에 이어 국민전선 대표로 선출되었다. 2011년 5월 대통령 선거에서 마린 르 팽은 니콜라스 사르코지와 사회주의자 후보 프랑수아 올랑드에 대항하는 국민전선 후보로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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