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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569. 10. 18, 이탈리아 나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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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625. 3. 25, 나폴리 |
국적 | 이탈리아 |
요약
이탈리아의 시인.
Marini라고도 씀.
17세기 이탈리아 시문학을 지배했던 마리니즘 유파의 창시자이다. 그가 쓴 작품은 유럽 전역에서 인정을 받았고 모방자들의 작품을 월등히 능가했다. 모방자들은 그의 복잡한 언어 구사와 정교한 착상, 은유 등을 극단적으로 추구했기 때문에 마리니즘이라는 말은 경멸적인 용어가 되고 말았다. 그의 작품은 유럽 전역에서 번역되었다.
부모의 강요로 법학을 공부했으나 개업하기를 거부했다. 1590년부터 자주 금전문제를 일으켜 이탈리아와 프랑스 법정을 드나드는 등 방종한 생활을 했는데, 검열을 무시하고 간신히 출판했던 시집이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초기 작품의 대부분이 큰 호응을 얻어 필사본으로 읽혀지다가 그의 만년에 출판되었다. 1596년에 〈시링크스 La sampogna〉라는 신화적이고 목가적인 주제를 담은 관능적인 전원시 연작을 썼으나 1620년이 되어서야 출판할 수 있었다.
잠시 나폴리 왕자의 비서로 지내다가 1598년과 1600년 2차례에 걸쳐 불경죄로 체포되었는데, 매번 권력있는 추종자들의 도움으로 풀려났다. 그뒤 로마로 가서 교황의 조카인 피에트로 알도브란디니 추기경과 깊은 교분을 맺고 그와 함께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를 방문하기도 했다.
파르마에서 관능적인 내용의 시를 몇 편 출판하려다 검열에 걸려 금지당했으나 초기 시들은 〈시 Le rime〉(1602)·〈하프 La lira〉(2권, 1608, 1614)라는 제목으로 출판할 수 있었다. 1608~15년에는 토리노에서 사보이 공작의 후원을 받았으나, 경쟁시인 가스파레 무르톨라를 비난하는 내용의 풍자시 〈무르톨레이데 La Murtoleide〉(1619)를 써서 공작의 분노를 샀다. 무르톨라는 이 일과 다른 이유들을 내세워 그를 투옥시켰다.
후에 친구들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풀려난 마리노는 1615년 토리노를 떠나 파리로 가서 1623년까지 마리 드 메디시스와 루이 13세의 후원을 받으며 지냈다. 파리를 떠나기 전에 20년이나 걸려서 만든 가장 뛰어난 작품인 〈아도네 Adone〉(1623, 1922년 R. 발사모 크리벨리가 결정판 〈아도니스〉 선집으로 편집)를 출판했다. 이것은 4만 5,000행으로 된 장편시로 비너스와 아도니스의 사랑 이야기에 많은 여담을 덧붙여 만든 작품인데, 마리노 문체의 장단점들이 모두 드러나 있다. 가장 훌륭한 부분은 완벽한 문체로 쓴 화려한 대목이며, 가장 좋지 않은 부분은 지나친 기상과 은유, 말장난과 과장을 해서 쓴 대목이다.
1623년 이탈리아로 돌아왔을 때 다시 검열에 걸려 곤란을 겪게 되었으나 죽을 때까지 나폴리에서 지냈다. 그밖에 기억할 만한 작품으로는 미술품을 시적으로 재창조하려 한 〈화랑 La galeria〉(1620)·〈무고한 자들의 학살 La strage degli innocenti〉(1632)이 있다. 그의 편지들은 1627년에 〈서한집 Lettere〉으로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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