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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펑

다른 표기 언어 Li P'eng , 李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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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28. 10. 20. , 중국 쓰촨성[四川省] 청두[成都]
사망 2019. 7. 22., 중국 베이징[北京]
국적 중국

요약 중국의 정치가. (병). Li Peng. (웨). Li P'eng. 저우언라이의 양자로 자라 소련 유학을 하고 전력기술 전문가로 관계에 진출했다. 그는 1989년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던 텐안먼 사태를 무력으로 진압할 당시 총리로써 강경진압을 주장하여 평생 이에 대한 책임과 부담을 안고 살았다.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는 등 16년 동안 중국 정부의 2인자로 군림했으며, 1992년 한중 수교에도 큰 역할을 했다.

리펑(Li P'eng)

중국의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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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국민당 정권에 의해 처형된 리숴쉰[李碩勳]의 아들로 1939년부터 저우언라이[朱恩來]와 그의 부인 덩잉차오[鄧潁超] 밑에서 성장했다. 1948년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나 모스크바 동력대학에서 공부했다.

1955년에 중국으로 돌아와 1979년까지 전력문제 전문가로 있다가 1979~82년 국가전력 산업부 부장관 및 장관과 수리동력부 제1부장관을 역임했다. 1982년에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에 들어간 이후, 1985년 중국공산당 제12회 전국대표대회 제5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중앙정치국 위원 겸 중앙서기처 서기로 임명되는 등, 중국공산당의 주요인물로 떠올랐다. 또한 이보다 앞서 국가교육위원회 주임을 역임하기도 했다.

1987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이 되었으며, 1988년 4월에는 덩샤오핑[鄧小平]에게 발탁되어 중국공산당 총서기로 자리를 옮긴 자오쯔양[趙紫陽]의 뒤를 이어 주석에 취임했다. 리펑은 '개방'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취했으며, 중앙정부 통제하의 경제적·정치적 안정 유지에 주력한 것으로 평가된다.

1989년 4월 베이징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학생시위가 발생했을 때 필요하다면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할 것을 천명한 초강경파이기도 했다. 덩샤오핑의 동의를 얻어 5월 20일 중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6월초에는 톈안먼[天安門] 광장에 군대를 투입하여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내고 민주화운동을 압살했다. 1992년 10월 12일 개최된 제14회 전국대표대회에서 국무원 총리로 유임되었다.

리펑은 1998년까지 국무원 총리를 지냈으며, 이후에는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었으며,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다. 리펑은 한국과 수교하는 과정에서 북한과의 관계를 조율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92년 한국이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할 당시 총리를 지냈으며, 1994년 총리로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리펑은 16년동안 중국 정부의 2인자로 활동했으나, 평생 텐안먼 사태에 대한 부담과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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