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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784. 1. 4, 프랑스 디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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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55. 11. 3, 파리 |
국적 | 프랑스 |
요약 프랑스의 조각가.
보통 〈라 마르세예즈 La Marseillaise〉(1833~36, 파리 개선문)라고 불리는 공공기념물 〈1792년 의용병들의 출정 Departure of the Volunteers of 1792〉을 제작했다. 18세기말과 19세기초 프랑스 조각의 형식주의를 거부하고 동적·감성적인 양식을 옹호하였으며, 50년이 넘도록 관공의 제작물 의뢰를 맡아 일한 예술가의 전형이 되었다.
아버지의 금속세공소에서 일하다가 아버지가 사망하자, 위대한 조각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파리로 갔다. 1812년 로마상(賞)까지 탔지만 나폴레옹 전쟁 때문에 로마에 갈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열렬한 보나파르트주의자(나폴레옹 지지자)였다.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조각이 추구하는 원칙들에 철저히 의거하여 만든 〈날개 달린 신을 신은 메르쿠리우스 Mercury Attaching his Winged Sandals〉(1828, 파리 루브르 소장)로 처음 대중의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그는 고전적 기준의 제약성을 싫어했으므로 오히려 낭만적 사실주의자라고 부르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의 작품 〈거북이를 가지고 노는 나폴리의 어부소년 Neapolitan Fisherboy Playing With a Tortoise〉(1834, 루브르 소장)을 보면, 특이한 자세와 벌린 입 등이 모두 전통을 어기고 있다. 파리의 옵세르바투아르 광장에 세워진 4명의 육군원수의 상(像)을 보면, 칼을 쥔 손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고 입벌린 모습 등이 신고전주의에서 보면 원칙들에 어긋난 것이었다. 개선문에 새겨져 있는 의용병들의 군상(1792년의 혁명운동을 위해 만들었음)은 고전적인 세부표현이나 낭만적이고 정열적인 느낌을 준다.
디종 근처 픽생에 있는 기념상 〈영원히 잠들지 않는 보나파르트 Bonaparte Awakening to Immortality〉(1847)에 대해, 비평가들은 뤼드의 보나파르트에 대한 아첨때문에 미적판단력이 흐려졌고 결국 그 작품은 허풍스러운 실패작이었다고 평했다. 그외의 사람들은 그 작품에 나타난 면밀한 사실주의를 높이 평가했다. 말년에 접어들어 초기의 고전주의 양식으로 되돌아갔지만, 이무렵 만든 작품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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