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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중부에 자리잡은 로마는 티레니아 해로부터 내륙으로 24km 되는 지점에 테베레 강을 끼고 있다.
7개의 구릉과 많은 분수, 둥근 지붕들, 그리고 명승지의 대부분은 옛 성벽 안에 들어 있다. BC 390년 갈리아족의 침입으로 로마가 황폐해진 지 약 12년 후에 완공된 세르비아 성벽은 에스퀼리노 구릉과 카일리오 구릉을 비롯한 7개의 구릉 대부분을 에워싸고 있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이 옛 로마 시의 면적은 현 로마 총면적의 4%에 지나지 않으며, 로마의 12개 행정지역 중 가장 규모가 작은 구역이기도 하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지역은 22개의 리오니(rioni:행정단위의 하나)로 나뉘고, 그 리오니들 주변에는 1911년 이후 공식적으로 로마 시에 흡수되기 시작한 35개의 콰르티에리 우르바니(quartieri urbani:도시 행정단위)가 위치해 있다.
시 경계선 바로 안쪽의 서부 및 남서부 가장자리에는 6개의 커다란 수부르비(suburbi:교외지역)가 있으며, 시 경계선 밖에는 거의 로마 시 전체 면적의 2배와 맞먹는 로마 자치행정구가 있다. 로마의 여름은 종종 24℃가 넘는 무덥고 건조한 날씨를 보이나, 포넨티노(24km 떨어진 티레니아 해에서 불어오는 서풍) 때문에 오후에는 서늘해지는 경우가 많다.
연중 강우량은 약 840㎜이며, 봄과 가을에 집중적으로 비가 내린다. 평균기온이 약 7℃로 온화한 편인 겨울은 가끔씩 서리와 가벼운 눈발이 날리는 추운 날씨를 보이기도 하고 트라몬타나(거센 북풍)가 자주 분다.
로마 중심부의 주요거리인 코르소 가도는 고대 로마 때부터 중요했으며 당시에는 아드리아 해로 통하는 도로로서 플라미니아 가도로 불렸다. 이 거리는 카피톨리노 구릉 밑자락에서부터 포폴로 광장까지 뻗어 있고, 포폴로 성문을 통과하면서부터는 옛 이름 그대로 플라미니아 가도로 불린다.
코르소 거리의 첫 명승지는 통일 이탈리아의 초대 왕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를 기념해 세운 비토리아노이다. 그곳에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한 무명 용사들의 묘가 있다. 1911년에 세워진 신(新)바로크 양식의 대리석 산은 매우 희고 높은 기념물로, 로마의 주요기념물들 중 가장 웅장하다. 코르소 가도의 깨끗한 상점들 사이사이에는 5개의 교회, 8개의 필라초(궁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기념 기둥이 서 있다.
첫번째 교회인 산 마르코 성당은 AD 336년경 고전적인 바실리카풍으로 지어진 최초의 로마 교구 교회이다. 현재의 교회는 9세기에 지어져 15세기 때 베네치아 태생의 교황 바오로 2세에 의해 재건된 것인데, 바오로 2세는 추기경 시절인 1445년 이 교회 부근에 팔라초와 팔라체토 베네치아를 세웠으며, 교황이 된 이후에 확장 공사를 했다(베네치아, 팔라초). 바오로 2세가 사육제 행렬에 갈채를 보내며 군중에게 축복을 베풀었던 팔라초의 발코니에서는 훗날 이 궁전을 자신의 지휘본부로 삼은 무솔리니가 군중들을 향해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이 궁전은 현재 르네상스 예술박물관이 되어 있으며, 그 속에 국립 고고학 및 예술사 연구소의 부설 도서관이 들어 있다.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 유배지에서 번민의 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 그의 어머니 레티치아 부인은 팔라초 보나파르테(지금의 팔라초 미스치아텔리)에서 역시 번민의 하루하루를 보냈다. 길 건너편에 있는 팔라초 살비아티는 17세기에 느베르의 공작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19세기에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소유가 되었다.
팔라초 도리아는 15세기말에 지어진 건축물로 건물 정면은 1734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도나우 강 연안의 부족들을 쳐부수는 장면이 돋을새김되어 있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기둥은 로마를 침략한 여러 그리스도교도들의 약탈 속에서도 무사히 보존되었는데, 그것은 이 기둥이 교황청 재산이었기 때문이다.
이 기둥을 에워싼 콜론나 광장 안에는 팔라초 키지(1562 건설)와 팔라초 베데킨트가 서 있다. 팔라초 키지는 여러 해 동안 외무부 건물로 쓰였으나 현재는 총리 관저이며, 19세기에 세워진 팔라초 베데킨트는 현재 신문사 사옥으로 쓰이고 있다. 코르소 거리의 또다른 명물로는 포폴로 광장을 꼽을 수 있다. 이 광장은 로마로 들어가는 의식용 통로로서 300년이 넘게 걸려 건설되었으며, 여러 시대(BC 13~AD 19세기)의 다양한 건축양식이 놀라운 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1561년에는 중세풍의 도시 성벽문인 포폴로 성문이 재건되었다. 스페인 광장의 건축물 중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유명한 스페인 계단이다. 그러나 이것은 17세기에 스페인 대사관이 광장에 들어서면서 붙은 이름이고 사실은 프랑스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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