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생 | 1811. 3. 4, 영국 요크셔 리치먼드 |
---|---|
사망 | 1879. 6. 27, 런던 |
국적 | 영국 |
요약 인도의 영국 총독이자 부왕.
펀자브에서 광범한 경제적·사회적·정치적 개혁을 행해 '펀자브의 구세주'라는 별명을 얻었다.
1830년 형 헨리와 함께 캘커타(지금의 콜카타)를 여행한 뒤 델리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19년 동안 판사보(判事補), 치안판사, 징세관을 지냈고 그동안 탈룩다르(징세관)가 농민을 압박하는 것에 반대 입장을 취했다.
잠시 귀국(1840~42)해서 생활한 뒤 다시 돌아가 제1차 시크전쟁(1845~46) 때 펀자브 지방에서 전투중인 인도 주재 영국군에게 델리의 보급품 수송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그 공로로 나이 35세에 새로 병합된 줄룬두르 주(州)의 행정관으로 승진했다. 이 직책에 있으면서 그는 산간의 족장들을 복속시키고, 조세 제도를 마련하고, 법정과 경찰서를 설치했다. 또한 여아 살해와 수티(suttee:남편의 시신을 화장할 때 아내가 함께 타죽는 것)의 관습을 금했고 많은 공무원을 육성했다. 그는 형의 라호르 총독대리직을 2회 대신 맡았다.
시크교도의 의회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그는 영국의 통제 아래 재정개혁을 수행하려고 애썼다. 헨리가 의장이었던 펀자브 행정위원회 일원으로서 그는 제2차 시크 전쟁(1848~49) 이후 1차 세입책정안을 입안했으며 지역관세의 폐지, 단일통화와 우편제도의 도입 및 도로와 운하의 건설을 촉진했다. 이러한 사업의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그는 족장들의 재산상의 특권을 축소시키고 근검절약 정책을 행했으며 이 때문에 자신의 형 헨리와 충돌하기도 했다.
1853년 인도 총독 제임스 램지 댈하우지 경은 펀자브 위원회를 해체하고 행정부의 수석행정관으로 존 로렌스를 임명했다.
1857년 세포이(영국군에 고용된 인도병사) 항쟁이 발발하자 로렌스는 세포이군을 펀자브에 제한하고 아프간의 통치자 도스트 모하마드 칸과 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으로 그는 준(準)남작에 봉해졌고 바스 1등 훈장을 받았다. 짧은 기간 영국 방문 후에 1864년 영국정부 공무원으로 다시 인도에 돌아왔고 총독과 부왕으로 임명되었다.
로렌스는 충성이 의심스러운 세포이군과 약해져가는 인도 왕실군 속에서 영국의 안전을 추구했다.
인도인의 고위 공무원 임명에는 반대했지만 교육기회의 확대는 장려했다. 그는 현명하게도 1863년 아프간의 아미르 도스트 모하마드의 사후 후계분쟁에 개입하는 것을 삼갔고, 아라비아와 페르시아 만 문제에 연루되는 것을 거부했으며, 권력을 확보하고 있는 모든 족장을 인정했다. 1869년 귀국 뒤 펀자브와 햄프셔 그래틀리의 로렌스 남작작위를 받았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세계사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