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생 | 1777년 12월 4일, 프랑스 리옹 |
---|---|
사망 | 1849년 5월 11일, 파리 |
국적 | 프랑스 |
요약
대단히 매력있고 재치있던 프랑스의 살롱 여주인.
결혼 전 성은 Bernard. 별칭은 Madame de Rcamier.
19세기초 파리의 중요한 정치계·문학계의 명사들이 그녀의 살롱으로 모여들었다.
부유한 은행가의 딸로 수녀학교를 다녔고 1792년에 아버지가 있던 파리로 가서 부유한 은행가와 결혼했다.
레카미에는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기 시작했고 그녀의 살롱은 곧 정치와 예술 분야의 거물들이 모여드는 사교장이 되었다. 단골손님 중에는 나중에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카를 14세가 된 베르나도트, 나폴레옹 정부에 반대한 장 모로 장군 같은 왕당파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1805년 나폴레옹이 실시한 정책으로 그녀의 남편은 커다란 재정손실을 입었고, 같은 해 나폴레옹은 그녀를 파리에서 추방하도록 명령했다. 제네바에서 친한 벗 스탈 부인과 함께 지내다가 그뒤 로마를 거쳐(1813) 나폴리로 갔다. 이 시기의 레카미에는 스탈 부인이 쓴 소설 〈코린 Corinne〉에 문학적으로 형상화되었다.
그녀는 1815년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한 뒤 파리로 돌아왔으나 다시금 재정손실을 입었다.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1819년부터 살롱을 계속 열었고 학창시절 독방을 썼던 옛 파리 수녀원인 아바예오부아에서 손님을 맞았다. 늘그막에는 프랑스의 작가이자 정치가인 프랑수아 샤토브리앙과 가까운 벗이 되었다.
그는 살롱의 중심적인 인물이었고 이곳에서 자기 작품을 낭독했다. 유명하고 세력있는 수많은 인물들이 그녀를 추앙했지만 샤토브리앙처럼 그녀에게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없었다. J. L. 다비드와 프랑수아 제라르가 그린 그녀의 유명한 초상화 2점이 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역사인물과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