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생 | 1820. 1. 24, 미국 뉴욕 리마 근처 |
---|---|
사망 | 1869. 6. 18, 뉴욕 시 |
국적 | 미국 |
요약 미국의 언론인·정치가.
〈뉴욕 타임스 The New York Times〉(1851 창간) 최초의 편집장이자 주요소유주였던 그는 당대 신문의 스타일과 논조를 향상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으며 공화당을 조직한 주역 중의 한 사람이다.
1840년에 레이먼드는 호레이스 그릴리 소유의 주간지 〈뉴요커 New Yorker〉에서, 1841~48년에는 뉴욕의 일간지인 〈트리뷴 Tribune〉에서 일했다. 1843년경 그와 조지 존스는 독자적으로 신문사를 경영해볼 계획을 세웠으나 그 계획은 자본 부족으로 계속 연기되다가 1851년 9월 18일 뉴욕의 〈데일리 타임스 Daily Times〉(1857년에 〈뉴욕 타임스〉로 이름이 바뀜)의 창간으로 비로소 실현되었다. 분파와 당파 간의 증오가 횡행하던 1850년대의 일반화된 관행이라 할 수 있는 지나치게 격정적인 논조나 극단적인 인신공격 등에서 비교적 중립적인 자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당시의 많은 언론인들은 이러한 격심한 분파적·당파적 경향을 부채질했으며, 그로 인해 미국의 남북전쟁(1861~65)이 발생하도록 조장하는 역할을 했다. 1859년에 일어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피에몬트 대(對) 오스트리아와의 전쟁 기간에 종군기자로 활약한 바 있었던 레이먼드는 남북전쟁 기간에도 종군기자로서 전쟁터를 누볐다.
레이먼드는 여러 해 동안 그릴리 밑에서 유능한 일꾼으로서 그를 도와주었지만 성격상으로 서로 맞지 않아 결국 그들은 정적이 되고 말았다. 1854년 레이먼드가 그릴리를 누르고 휘그당의 뉴욕 부지사 후보로 지명되고 결국 당선된 일을 계기로 해서 그릴리, 서로 위드, 윌리엄 H. 시워드의 정치적인 동맹관계는 깨지고 그로 인해 휘그당도 해체되고 말았다. 1856년 2월 새로 창립된 공화당의 피츠버그 전당대회를 위해 레이먼드는 〈국민에게 드리는 글 Address to the People〉로 알려진 당 강령을 작성했다.
1864년에 그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연설문 대부분을 맡아 작성했으며 그해부터 1866년까지 공화당 전국대표자회의의 의장을 역임했다. 1865년에는 2년 임기의 미국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지만 앤드루 존슨 대통령의 대표적 정적인 새디어스 스티븐스의 급진적인 재건계획에 제대로 맞서지 못했다 하여 비난을 받았다. 하원의원 임기가 끝날 무렵 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자 레이먼드는 다시 언론계로 돌아와 적극적으로 신문일을 재개해나갔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정치가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