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생 | 미상 |
---|---|
사망 | 1327. 11. 16 |
국적 | 캔터베리 |
요약 캔터베리 대주교.
잉글랜드의 왕 에드워드 2세와 관련된 정치활동으로 유명하다.
윈저 궁에서 빵 만드는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 13세기말 에드워드 1세에게 봉사하는 성직자가 되었다. 왕세자 에드워드(뒤의 에드워드 2세)의 가정교사를 지낸 듯하며 그의 총애를 받았다. 1307년 에드워드 왕자가 왕위에 올랐을 때 재무장관에 임명되었으며, 1308년에는 우스터의 주교가 되었다. 1313년 5월 캔터베리 대주교 로버트 윈철시가 죽자 에드워드 2세는 교황 클레멘스 5세를 설득해(매수한 것 같음) 레이놀즈를 대주교직에 앉혔으며 그는 1314년 2월 캔터베리에서 취임식을 가졌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캔터베리 대주교와 요크 대주교 사이의 세력 다툼은 그의 대에도 계속되었고 왕과의 사이도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교황이 레이놀즈에게 특권을 내린 것도 그 원인이 되었다. 1323년경에는 왕과의 관계가 거의 끊어졌고 헤리퍼드 주교인 올턴의 애덤을 옹호하며 왕에게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또한 에드워드 2세가 큰 위험에 처했을 때 비열하게 행동했다. 즉 왕과 잉글랜드 귀족들 사이에 세력 다툼이 일어나자 승자 편에 서고 싶은 욕심에서 켄트로 도망간 그는 에드워드 2세가 투옥된 뒤에 런던으로 돌아와 에드워드 3세를 왕으로 선언하고 1327년 2월 그에게 왕관을 씌워주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종교인과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