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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0. 4. 20, 러시아 돈카자크 노보체르카스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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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2002. 4. 28, 아바칸 |
요약 러시아의 정치인.
알렉산드르 이바노비치 레베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소련의 붉은군대에서 싸웠다. 젊은 시절에 권투선수였던 레베트는 1973년에 공수부대원을 훈련시키는 군사학교를 졸업했고, 1981~82년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공정부대를 지휘해 소련의 영웅으로 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비난했다.
1985년에 프룬제(지금의 키르기스스탄의 비슈케크)사관학교를 졸업했고, 1991년에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에 대한 쿠데타 기도가 일어났을 때 대통령궁을 방어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것은 사실 어느 정도 운이 따랐기 때문이었다. 1992년에는 몰도바의 트란스드네스트르 지역에 주둔한 러시아 14군단 사령관에 임명되었다. 1995년에 그는 체체니아 문제를 포함한 파벨 그라초프 국방장관의 정책을 비난해 군복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레베트는 1995년 12월 실시된 총선에 출마해 의회에 진출했다. 1996년에 그는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국민이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될 때까지 민주주의 시행을 연기하자고 주장했다. 권위적이고 때로는 반서방적인 그의 웅변은 많은 러시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는 1차 투표에서 총투표수의 약 15%를 얻어 3위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켰다. 옐친은 레베트의 지지자를 흡수하기 위해 그를 안보위원회 서기 겸 국가안보고문에 임명했다. 이 덕택에 옐친은 2차 투표에서 공산당 후보인 겐나디 쥬가노프를 누를 수 있었다.
러시아 안보회의의 서기가 된 레베트는 체체니아 사태를 해결할 책임을 넘겨받았다. 그는 러시아에서 이탈한 체체니아로 날아가 체체니아 분리주의자들과 러시아군 지휘관들을 만났고, 8월말에는 정전협정을 맺는 데 성공했다. 이 협정에는 5년 동안 체체니아 독립에 대한 결정을 유보한다는 합의도 포함되어 있었다. 10월 17일 레베트는 조직의 일원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지 못하는 독불장군인 데다 대통령직에 대한 야심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이유로 옐친에 의해 최고 안보 책임자의 자리에서 해임되었다.
이후 레베트는 중앙 정치 무대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1998년 선거에서 러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지역인 크라스노야르스크 주지사로 당선되며 정치생명은 더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재임하던 2002년 4월 시베리아에서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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