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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피트

다른 표기 언어 Jean Laffite
요약 테이블
출생 1780(?), 프랑스
사망 1825(?)
국적 미국

요약 해적·밀수업자.
Lafitte라고도 씀.

나중에는 불법 무역에서 손을 떼고 1812년 영미전쟁 때 미국 편에 서서 뉴올리언스 방어를 위해 영웅적으로 싸웠다.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1809년경 형제인 피에르와 함께 뉴올리언스에서 철물 가게를 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해적들이 약탈해온 물건이나 노예들을 보관하는 창고로 썼다고 한다. 1810~14년 라피트 일당은 뉴올리언스 남쪽 바러태리아 만에 있는 외딴 섬에 활동거점을 만든 것 같다.

그들은 선박을 나포하라는 카르타헤나 공화국(지금의 콜롬비아)의 주문을 받고 스페인 상선을 공격했고 육지의 상인조직을 통해 약탈한 물건들을 불법으로 팔아넘겼다. 바러태리아 만은 뉴올리언스로 통하는 중요한 길목이었으므로 1812년 전쟁 때 영국은 라피트에게 협조를 요청했고 그 대가로 3만 달러와 영국 해군 지휘권을 주었다. 그는 협력하는 척하면서 루이지애나 관리들에게 뉴올리언스가 위험에 처했음을 알렸다. 그러나 W. C. C. 클래번 총독은 라피트를 믿지 않고 오히려 미국 육·해군을 모아 그의 거점을 습격했다. 배 몇 척이 부숴지긴 했으나 라피트의 사업이 망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계속 자기가 미국에 충성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번에는 뉴올리언스 방어전에서 크게 몰리고 있던 앤드루 잭슨 장군에게 그와 그 부하들이 완전히 사면받는다면 잭슨을 돕겠다고 제의했다. 잭슨이 이 제의를 받아들이자 라피트 일당은 뉴올리언스 전투(1814. 12~1815. 1)에서 용감하게 싸웠다. 잭슨은 '전투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인 사람'이라며 라피트를 개인적으로 칭찬했고 제임스 매디슨 대통령은 라피트 일당을 사면한다는 공식 포고를 내렸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라피트는 예전의 생활로 되돌아갔다. 1817년에는 1,000여 명의 부하들과 함께 텍사스 주의 한 섬에 캠페체라는 이름의 코뮌(자치체)을 만들었고 1819년 잠시 그곳의 통치를 맡기도 했다(나중에 이곳은 갤버스턴 시가 됨). 이곳을 거점으로 그는 계속 스페인 상선을 약탈했고 그의 부하들은 모두 소문난 해적이 되었다. 1820년 그의 부관 몇 명이 미국 배들을 공격함으로써 미국 당국은 공식적인 압력을 받아 이들을 응징하는 작전을 펴게 되었다.

그 결과 라피트는 이듬해 자기가 건설한 마을에 불을 지른 뒤 부하들과 함께 아끼던 '프라이드호'를 타고 달아났다. 그뒤로도 수년 동안 스페인령 아메리카 해안(남아메리카 북부의 카리브 해 연안지방)을 따라 약탈행위를 계속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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