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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아프리카 중부 앨버트니안자 호(지금의 앨버트 호)에 면해 있는 지역.
상(上)나일 강 서안에 있으며, 1894~1909년에 콩고 자유주의 지배를 받다가 영국·이집트 공동통치령 수단(수단 민주공화국의 전신)에 합병되었다.
유럽인이 처음 이 지역 북부에 들어온 것은 1841~42년, 이집트 오스만 제국의 술탄인 무하마드 알리 파샤가 원정대를 파견했을 때였다.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인접한 군대 주둔지들인 동안의 곤도코로와 서안의 라도는 곧 하르툼에서 온 상아와 노예를 거래하는 상인들의 거점이 되었다.
1864년 영국의 탐험가 새뮤얼 베이커 경이 앨버트니안자 호를 발견한 뒤 전지역이 온갖 국적의 노예약탈자들로 들끓었다. 이집트령 수단은 라도의 영유권을 주장했지만 노예거래의 통제에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1870년 베이커가 적도지방 총독으로 곤도코로에 도착하면서부터였다. 베이커의 후임자인 C. G. 고든 장군은 바흐르알가잘(지금의 수단공화국 남부에 있는 주)을 하나의 독립 행정구로 분리했다.
1877년 에민 파샤(독일인 행정관)가 적도지방 총독에 부임하여 본부를 라도에 두었으나, 1885년 수단의 마디파(派) 이슬람교도에게 쫓겨났다. 그뒤 그는 남쪽 와델라이로 옮겼다가 1889년 동쪽 해안지방으로 철수했다. 1894년 2월 영국은 나일 지방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그해 5월 바흐르알가잘과 파쇼다를 포함하는 나일 지방 서쪽지역의 광대한 땅을 콩고 자유주 통치자인 벨기에의 국왕 레오폴 2세에게 임대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압력을 받아 레오폴은 동경 30° 동쪽과 북위 05° 30′ 이남지역만을 차지하기로 동의했으며, 그럼으로써 후에 라도 지역(레오폴의 점유지역)으로 불리게 된 지역의 경계가 확정되었다.
레오폴 2세는 프랑스가 파쇼다에서 철수한 뒤(1898) 영국으로부터 조차했던 지역 전체에 대한 점유권 주장을 재개했다. 비록 그의 주장은 통하지 않았고 영국과의 새로운 협정 결과 그 임대차 계약이 취소되었지만, 레오폴은 그 지역을 재위가 끝난 뒤 6개월 후에 영국·이집트 공동통치령인 수단에 돌려준다는 조건으로 계속 보유했다. 1909년 레오폴이 죽자 라도 지역은 1910년 영국·이집트 공동통치령 수단에 합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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