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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82. 12. 11, 미국 뉴욕 뉴욕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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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47. 9. 20, 뉴욕 시 |
국적 | 미국 |
요약 미국의 정치가.
1933~45년 3차례 뉴욕 시장을 역임했다. 애리조나 주에서 성장했으나 16세가 되던 해 어머니를 따라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이주했다. 부다페스트의 미국 영사관에서 근무하다가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와 유고슬라비아의 피우메로 전근했고 1906년 미국으로 돌아왔다. 앨리스 섬의 이민국 통역관으로 활동하는 틈틈이 뉴욕대학교에서 법률을 공부했으며 1910년에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1916년 하원에 출마했으나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공군조종사로 자원입대했다. 1918년 하원에 복귀하여 군사비 지출을 반대하고 여성참정권을 옹호했으며 1922년 재선되었을 무렵에는 노동조합 근로자들을 위한 복지입법가로 명성을 떨쳤다. 1932년 스트라이크·보이콧·평화로운 시위에 대한 법원의 제재를 금지하는 노리스-라 과디아 법을 발의했다.
라 과디아는 자유당과 공화당의 연합후보로 첫번째 뉴욕 시장선거전에 임했다. 시장에 취임한 '작은 꽃'(라 과디아의 애칭)은 부패와 싸우고 노동조합을 후원했으며 시정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뉴욕 시헌장의 개정작업에 착수했다. 뉴욕을 방문중인 나치 사절단의 경호를 위해 유대인 경찰관을 배정하고 석탄파업중에는 노사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사무실의 난방공급을 중단시키는 등 드라마틱하고 다채로운 성격의 소유자였다.
1941년 전미 민방위 대책위원회 위원장, 1946년 국제연합구제부흥사업국(UNPRA) 사무총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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