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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13. 5. 25, 영국 서리 리치먼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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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65. 12. 22, 런던 |
국적 | 영국 |
요약 라디오 뉴스 기자의 선구자, 영국 최초의 방송언론인.
영국 BBC 방송 최초의 종군특파원이었으며 라디오 방송을 통해 그의 목소리는 대부분의 영국인들에게 친숙해졌다. 그는 초창기 텔레비전 시대에 화면을 통한 인상적인 모습으로 역시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졌었다.
정치가·편집자인 프레더릭 J. G. 딤블비의 아들인 딤블비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그의 가족 소유의 신문인 〈리치먼드 앤드 트위크넘 타임스 Richmond and Twickenham Times〉에서 일했다. 그로부터 5년 뒤 여러 신문사를 전전하던 끝에 그는 1936년 BBC방송 당국자들을 설득하여 BBC의 '시사대담부'(Topical Talks Department)에서 일하게 되었다.
자신만만하고 영리한 청년이었던 딤블비는 그당시 아직 직종으로서 정착되지 않았던 라디오뉴스 기자가 곧 자신의 천직이라고 자각한 방송언론의 창시자 중의 한 사람이었으며, 그 새로운 직종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찾아냄으로써 사실상 훗날 널리 일반화된 라디오 보도와 텔레비전 보도의 지침이 되는 전통을 창조한 셈이었다.
BBC방송은 딤블비를 스페인 내전 현장으로 파견해 처음으로 외국특파원을 두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그는 다시 '종군특파원'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부여받고 전쟁터에 나가 유럽·아프리카·중동의 지상전을 보도했으며 또 영국공군이 독일을 공습할 때는 비행기에 탑승해 공습상황을 생생하게 보도했다.
대전이 끝나갈 무렵 딤블비는 영국민 모두에게서 사랑과 신뢰를 받는 국가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는 텔레비전에서 국가적인 행사나 중요한 정치적인 사건들을 다룰 때마다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텔레비전 앵커맨이었다.
그는 매주 한 차례씩 일반 사회문제들을 다루는 BBC의 영향력있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 〈파노라마〉의 주요진행자였으며,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1953)에서부터 윈스턴 처칠 경의 장례식(1965)에 이르는 국가적인 주요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면 으레 그가 텔레비전에 나와 이를 보도·해설하곤 했다.
제2차 세계대전 현장을 보도하는 틈틈이 딤블비는 몇 권의 책을 쓰기도 했으며 한창 텔레비전 일로 바쁜 가운데서도 가끔 라디오에 출연하곤 했다. 또한 신문과 잡지 등에 수시로 글을 쓰기도 했으며 자신의 언론인 생활의 첫 출발점이 되었던 그의 가족 소유의 신문경영에도 늘 능동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데이비드와 조나선이라는 두 아들을 두었는데, 둘 다 저명한 텔레비전 언론인이 되었다.
방송언론 분야에서 중요한 일을 한 사람들에게 수여하는 딤블비 상은 바로 리처드 딤블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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