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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등놀이·관등놀이라고도 한다. 등놀이를 성대하게 시작한 것은 통일신라 때부터로 정월 대보름에 황룡사의 백고좌대회(百高座大會)를 들 수 있다.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시대에 태조는 등놀이를 포함한 팔관회와 연등회를 국가적으로 장려했다. 연등회와 팔관회를 할 때에는 노래 부르고 춤추기 위해 야외무대를 만들고 이 무대의 주변에 수많은 등을 달아 등산과 같이 장식했으며, 등불을 늘여 불꽃바다를 이루게 했다. 조선시대의 등놀이는 음력 4월 초파일에 했는데, 고려시대의 정월 보름과 대비된다. 민간행사가 되었고, 조선 후기에 이르면 완전히 민간주도의 행사가 되며 특히 저잣거리의 상인층들도 많은 자금을 내어 장삿속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19세기의 기록에는 수박등·마늘등·연꽃등·칠성등·오행등·일월등·종등·북등·누각동·난간등·화등·가마등·산벗나무등·병등·항아리등·방울등·알등·용등·봉황등·학등·잉어등·거북동·자라등과 같은 다양한 등이 화려하게 등장했다. 당시의 등놀이는 대단히 호화찬란했고 명절 분위기를 한층 돋구었다. 등놀이가 성황을 이룬 곳은 서울·개성·평양과 같은 옛 도읍으로 이름난 도시들이었으며, 황해도 평산과 신천, 경기도 수원, 충청남도 논산 등도 등놀이로 유명한 곳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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