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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프랑스의 가장 위대한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는 뛰어난 상상력, 날카로운 지성, 예민하고 민감한 감수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19세기에 가장 이해받지 못한 예술가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1850년 〈일기〉에 "아름다움은 발견되지만, 단 한번 특별히 정해진 역사적 순간에만 발견될 뿐이다.
그러므로 그뒤에 오는 천재에겐 너무 불행한 일이다"라고 썼다. 그가 사람들의 오해 때문에 그토록 많은 슬픔을 겪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너무 일찍 태어나는 천재도 불행하다"는 말을 여기에 덧붙여도 좋을 것이다. 그의 천재성은 현대 예술의 섬세함과 비극적 측면을 미리 예시해 주었는데 그가 살아 있을 때 이런 면을 이해한 사람은 시적 직관력을 가진 샤를 보들레르뿐이었다.
들라크루아는 영국 화가인 J. M. W. 터너와 더불어 회화 기법의 대담한 혁신을 가져온 인상파에 직접 영향을 끼쳤고, 현대 표현주의의 선구자였다. 오귀스트 르누아르, 클로드 모네, 폴 세잔, 폴 고갱, 빈센트 반 고흐, 오딜롱 르동, 조르주 쇠라, 앙리 마티스, 파블로 피카소는 모두 자신들이 들라크루아의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했다. 그의 색채사용과 형태표현은 티치아노와 루벤스 못지않았다. 하나의 미학적 운동에 국한시키기에는 너무 폭이 넓은 화가이지만, 1830년경에 낭만주의 화가로 규정되었다. 그는 여기에 불만을 품고 그는 "나는 순수한 고전주의자다"라고 답했다. 그는 미술을 통하여 자기 존재의 시적 감흥을 전달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는 그림을 그릴 때마다 형태와 빛, 그리고 무엇보다 교향곡과 같은 채색을 창조했고, 표현이 풍부한 조화로운 통일체로 완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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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들라크루아에 대한 평가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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