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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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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6·25전쟁중인 1952년에 설립되어 1980년 언론통폐합조치로 연합통신(聯合通信)에 흡수·통합될 때까지 활동했던 국내 민영통신사.

동양통신(東洋通信)

동양통신 역대 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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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4월 20일 피난지였던 부산에서 양우정(梁又正)이 이전의 대한통신사를 인수하여 통신활동을 시작한 것이 그 출발점이다. 출범 당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웨스트렉스 텔레타이프(Westrex Teletype)를 수신장비로 설치했으며, 미국의 UPI통신과 독점계약을 맺고 외신을 받아 매일 9시간 30분 동안 250W 출력의 모스 방송으로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지방 송고를 했다. 또한 1일 3편의 통신지를 발행하기도 했다.

"진실을 신속·정확·공평하게 보도함으로써 민주적 민족문화발전을 위해 언론보국에 기여한다"는 창간 취지를 내걸었던 이 통신사는 1953년 1월 주식회사로 개편한 후 같은해 11월 서울 중구 남대문로 2가에 사옥을 정하고 체제를 개편했다. 이때 김성곤(金成坤)이 새 사장에 취임하면서 국내 굴지의 통신사로 성장했다. 1964년 3월 1일에는 주식회사를 사단법인체로 바꾸었으며, 그 이듬해인 1965년 4월에는 종로구 세종로로, 1973년 4월에는 종로구 청진동으로 사옥을 옮기면서 당시 합동통신(合同通信)과 더불어 양대 민영통신사로 발돋움했다.

창간 당시의 UPI통신 이외에도 미국의 NEA와 UFS통신, 영국의 KEYSTONE, 베트남의 VP, 일본의 교도[共同], 인도네시아의 ANTRA, 인도의 PPI, 미얀마의 NAD, 이탈리아의 ANSA, 프랑스의 AFP, 그리고 〈뉴욕 타임스〉의 특신판 등과도 외신계약을 맺는 등 뉴스 교환을 확대했다. 1969년 9월 해외부를 창설한 이후, 이듬해 2월부터는 해외송신을 개시함으로써 국제적인 송·수신체제를 갖추기 시작했다.

1959년 3월, 한국 언론계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워싱턴에 상주특파원을 파견한 일이 특기할 만하며, 1972년 4월 16-S 휴대용 사진전송기를 도입하여 같은해 8월 29일부터 9월 2일까지 평양에서 열렸던 남북적십자 제1차 회담 장면을 처음으로 전송했다. 그밖에 1953년 8월 편집국장으로 있던 정국은(鄭國殷)이 '국제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당시 사장이 실형을 선고받았으며, 1968년 7월에는 이른바 '군기누설사건'으로 편집부장을 포함한 기자들이 구속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1980년 11월의 언론통폐합조치로 같은해 12월 합동통신과 함께 연합통신에 흡수·통합되는 과정에서 폐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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