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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동방노력자공산대학 출신들을 중심으로 1929년말에서 1930년초에 걸쳐 전개된 조선공산당 재건운동 사건.
조선공산당 조직준비위원회 사건이라고도 한다.
1925년 제1차 조선공산당사건 때 상해로 망명했던 조선공산당 중앙간부 김단야(金丹冶)는 1928년 코민테른의 조선문제에 대한 12월 테제가 작성되자, 이에 근거하여 1928년 10월 일제의 검거로 파괴된 당을 재건하기 위해 1929년 7월 블라디보스토크로 갔다. 그는 그곳에서 동방노력자공산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하던 조두원(趙斗元)·김정하(金正河) 등과 당을 재건할 것을 협의하고 7월말에 서울로 잠입했다.
이들은 국내의 박민영(朴珉榮)·채규항(蔡奎恒) 등과 제1차 조선공산당의 유학생으로 동방노력자공산대학을 졸업하고 1929년 10월 귀국한 권오직(權五稷)·김응기(金應基) 등을 규합하여 1929년 11월 6일 조선공산당 조직준비위원회를 결성했다. 그리고 과거 화요회계(火曜會系)의 활동가들을 규합하여 주요도시에 지부를 결성하는 한편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원했다. 그러나 당시 광주학생운동의 전국적 확대에 호응하여 1930년 3·1절을 기해 대규모 시위를 일으키려던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면서 대거 검거를 당해 조직이 파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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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동방노력자공산대학졸업자사건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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